〇黙 祷
〇招 詞 使徒言行録 2章 1~4節
〇讃 頌 讃頌歌 196 (1・4節)
〇祈 祷
〇聖書奉読 ヨハネによる福音書 17章 20~22節
〇説 教 「すべての人を一つにしてください」
〇讃 頌 讃頌歌 183 (1・4節)
〇献 金
〇感謝祈祷
〇頌 栄 讃頌歌 5
〇主祈祷 主の祈り
※主日礼拝内容 (各家庭での礼拝に用いて下さい)
〇黙 祷 黙祷をもって礼拝を始めます。
〇招 詞 使徒言行録 2章 1~4節
五旬祭の日が来て、一同が一つになって集まっていると、突然、激しい風が吹いて来るような音が天から聞こえ、彼らが座っていた家中に響いた。そして、炎のような舌が分かれ分かれに現れ、一人一人の上にとどまった。すると、一同は聖霊に満たされ、“霊”が語らせるままに、ほかの国々の言葉で話しだした。
〇讃 頌 讃頌歌 196 (1・4節)
〇祈 祷 お祈りいたします。
恵み深い父なる神さま。
主の慈しみは深く、貴いゆえに、人生に疲れ果てた私たちは、あなたの恵みの翼の下に逃れようと、ここに集いました。どうぞ、命の源であられる主よ、私たちを休ませて下さい。そして、また新たな命の御言葉を通して、あらたに歩み出す、勇気と力をお与え下さい。
主よ、どうか今日から始まる一週間、あなたの御手の中でお守り下さい。私たちの冒したさまざまな罪をお赦し下さい。私たちに害を与える者を、私たちも許せるようにさせてください。どうか罪の誘惑に陥らないようにお導き下さい。御心にかなう一日一日を過ごさせて下さい。その日一日、与えられた命を感謝して、力いっぱい生き抜くことが出来ますように。
恵み深い父なる神よ。この世にあって、迷いの多い私たちを主の御元へと呼び集めて下さり感謝いたします。霊と真をもって、主に礼拝を献げますから、この時間、私たちと共にいて下さり、大いなる恵みをお与え下さい。
希望の源であられる主なる神さま。
コロナウイルスの緊急事態宣言も日本全国で解除され、新しい形での経済活動もはじまりましたが、様々な規制の中で、歩み始めた社会に、取り残される人たちがいないようにお守り下さい。日本社会全体で支え合い、新たな社会を作り出すことが出来る良き機会とならせて下さい。第二波・第三波の感染拡大も心配されます。今も、医療従事者をはじめ、感染拡大を防ぐために、日夜働く人びとをお守り下さい。介護や教育の現場に従事する人々が希望をもって、その使命を果たすことが出来ますようお支え下さい。
癒やしの主であられる神さま、
どうか、今も感染によって苦しむ人々に速やかな快復をお与えください。亡くなられた人びとの魂とその家族の上に、平安がありますように。また、自分の心の隙間を埋めようと、簡単に人をネットで中傷したり、自粛警察と称して、人を攻撃する人もおりますが、その人々の心の隙間を主の愛をもって満たして下さい。
主よ、また、私たちにも、この時間、御言葉を通して、恵みを降り注ぎ、平安と喜びをお与え下さい。このお祈りを、わたし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アーメン。
〇聖書奉読 ヨハネによる福音書 17章 20~26節
17:20 また、彼らのためだけでなく、彼らの言葉によってわたしを信じる人々のためにも、お願いします。
17:21 父よ、あなたがわたしの内におられ、わたしがあなたの内にいるように、すべての人を一つにしてください。彼らもわたしたちの内にい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世は、あなたが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ことを、信じるようになります。
17:22 あなたがくださった栄光を、わたしは彼らに与えました。わたしたちが一つであるように、彼らも一つになるためです。
17:23 わたしが彼らの内におり、あなたがわたしの内におられるのは、彼らが完全に一つになるためです。こうして、あなたが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こと、また、わたしを愛しておられたように、彼らをも愛しておられたことを、世が知るようになります。
17:24 父よ、わたしに与えてくださった人々を、わたしのいる所に、共におらせてください。それは、天地創造の前からわたしを愛して、与えてくださったわたしの栄光を、彼らに見せるためです。
17:25 正しい父よ、世はあなたを知りませんが、わたしはあなたを知っており、この人々はあなたがわたしを遣わされたことを知っています。
17:26 わたしは御名を彼らに知らせました。また、これからも知らせます。わたしに対するあなたの愛が彼らの内にあり、わたしも彼らの内にいるようになるためです。」
〇説 教 「すべての人を一つにしてください」ヨハネ 17章 20~26節
今日は、ペンテコステ・聖霊降臨日を記念する主日です。以前より、イエスさまが約束して下さった聖霊が弟子たちに降るということが、ついに起こった日です。使徒言行録2章にその時の状況が記されています。「五旬祭の日が来て、一同が一つになって集まっていると、突然、激しい風が吹いて来るような音が天から聞こえ、彼らが座っていた家中に響いた。そして、炎のような舌が分かれ分かれに現れ、一人一人の上にとどまった。すると、一同は聖霊に満たされ、“霊”が語らせるままに、ほかの国々の言葉で話しだした。」(使徒2章1~4節)
創世記11章に「バベルの塔」の話があります。人間が文化技術の発達とともに傲慢になり、神さまに対する畏れを忘れ、自らが神になろうと考えました。それに対する罰として、言葉の混乱が起こり、それまで一つの言葉を話しておりましたが、多言語となり、人はバラバラに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話しですね。これは人間の罪の故に、一つになれない人間世界を表しております。ペンテコステの日に聖霊がまずどのような働きをなさったのかと言いますと、聖霊の受けた弟子たちが、突然、多言語で話すように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言葉の違いを乗り越えて、また一つになれるきっかけを作ったということですね。
先週の説教でもお話ししましたが、私たちの信仰は、イエスさまの保護、聖霊の保護の中で守られており、私たちがイエスさまを信じることも聖霊の働きによらなければならなりません。ですから、聖霊の働きは、まず第一に、私たちにイエスさまを、神さまを信じさせることであるわけですね。でも、そこには信じさせる目的があるのです。私たちに神さまを信じさせて何をするのかと言いますと、私たち人間世界を一つにするということです。この一つにする、一つになるということと聖霊の働きは密接に関係しております。
先程の使徒言行録2章を見ますと、ペンテコステがどのようにして起こったのかが分かります。まず、弟子たち、イエスさまを信じる人々が「一同が一つになって集まって」おりました。彼らが一つになって集まっていると聖霊が降ったわけですね。一つになる、一つになろうとするところに聖霊が働かれたわけです。
今日の御言葉の中にも「一つ」という言葉が繰り返し出て来ます。「一つになる」「一つである」「一つにしてください」という言葉ですね。イエスさまは、聖霊の保護の中で、弟子たちが迫害や苦難を乗り越え、神さまの御言葉を伝えます。そして、弟子たちの言葉を通して、イエスさまを信じる人々が起こされます。その人々のためにイエスさまが祈られた内容が、今日の御言葉であるわけですが、それが、彼らが「一つになる」ということでした。21節です。「父よ、あなたがわたしの内におられ、わたしがあなたの内にいるように、すべての人を一つにしてください。彼らもわたしたちの内にい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世は、あなたが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ことを、信じるようになります。あなたがくださった栄光を、わたしは彼らに与えました。わたしたちが一つであるように、彼らも一つになるためです。」(21~22節)
厳密に言いますと、神さまの一つ、父・子・聖霊が一つというのと、私たち人間が一つということの意味には、大きな質の違いがあります。時間の関係上、詳しい説明は出来ませんが、簡単に言いますと、私たちが一つという時、それは神さまの愛に基づいて一つ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私たちの信仰は、イエスさまの御言葉によって表された父なる神さまの御心に従う、という信仰です。それはすなわち、父なる神さまの愛に、イエスさまの愛に倣って生きる、ということですね。
私たちは、父なる神さまがその独り子である主イエス・キリストを、この世界にお与えくださるほどに愛されています。私たちは、主イエス・キリストが、その命を私たちのために献げ、十字架の上で死んでくださるほどに愛されています。父なる神さまと主イエス・キリストの御心は、私たちを救う愛一色です。その愛を信じ、喜び感謝し、その愛に倣って、私たちも人を愛し、互いに愛し合って生きることが、父なる神さまと一つ、主イエス・キリストと私たちが一つということに他なりません。
ところで、「コンセンサス・ビルディング」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コンセンサス・ビルディングというのは、対立を合意へ導くコミュニケーションの技術の一種であるわけですが、組織や集団が何かを取り決める時に、そこに関わっている人が皆、共通理解を持てるようになるまで、つまり共通理解によって一致するまで話し合いを何度も繰り返すというやり方です。一致しないままに、途中で、多数決や独裁では決して決めないのです。ただ、そのためには、時間や労力を多く必要とします。基本的には教会でもこの方法を取って色々なことを決めているわけですが、ただ、誤解してはならないのは、話し合いを積み重ねていけば、全員の意見が同じになるとは限らないのです。いや、同じになることはあり得ないでしょう。ですから、このコンセンサス・ビルディングというのは、全員の意見を同じにすることではありません。
話し合いをする中で、お互いの意見が分かって来ます。意見の違いが分かって来ます。そして、相手の考えや気持も分かって来ます。その時、自分の意見を主張し続けるのではなく、自分の意見を譲る時があると思います。力で強制されて譲るというのではなく、相手のことを思い、組織全体のことを考えて、譲ること、引っ込めることがあると思います。そういうふうにして共通理解がつくられてゆき、決定に至るのが、コンセンサス・ビルディングということです
今日の御言葉の“一つ”であるということも、“同じ”であるということだと考えてはなりません。同じを求める心は、もし同じでないものがあったら、違うものがあったら、それを排除してゆくことになってしまいます。それが罪人である私たち人間ですね。
ですから、ここで言う“一つ”というのは、違うものがあっても、それを認め、受け入れ、包み込んでいこうとする、一つの共通理解が必要です。
違う者同士が、そこに一緒に居られる場所を、関係を生み出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のためには、自分の考えや気持をはっきりと言える信頼と勇気と共に、自分と違うものを認め、受け入れていく忍耐が必要であり、自分の意見を譲り、時には相手を優先していく優しさが必要です。それを一言で言うなら、“愛”ということです。互いに愛し合う愛です。
私たちは皆、一人ひとり、違います。意見も、考えも、性格も、好みも、性別も、年齢も、置かれている状況や抱えている問題も違います。同じになることはできません。ただ、一つになることはできます。一つになる努力はできます。皆が受け入れ合い、共に居られる交わりを造るために祈ることができます。それが互いに愛し合うということです。
そのように互いに愛し合う愛に、深みを与えるものは何でしょうか? それは、主イエス・キリストに愛されていることを信じる信仰に他なりません。そして、私たちの信仰による愛が深められるのは、自分のことを“罪人”だと思う自覚と、その罪人である自分が赦され、愛されているという意識ではないでしょうか。
昨年、ラグビーワールドカップが日本で開催され、大変盛り上がりました。「ONE TEAM(ワンチーム)」という言葉が、流行語の年間大賞にも選ばれました。一つになるということの象徴ですよね。ラグビーというスポーツが「自己犠牲」に基づくものであるので、この「自己犠牲」という言葉も再認識されました。ただ、これは一流の選手たちが、熟成した哲学や思想をもって、練習に励み、目標に向かって進んだ結果であって、普通の私たちが出来ることではないんですね。
だって、私たちが一つの目標を目指せば、あるいは、思想や信仰を同じくすれば、私たちは一つになれるのでしょうか? そういうことで一体感を味わうことは出来るかも知れませんが、実際には一つになることは難しいのです。
教会のことで例をあげますと、私たちの信仰も、実際には一つではありません。人それぞれ違うのです。イエスさまの愛に対しても、人によって受け取り方が違います。信仰生活も違います。その中で、私たちが一つである確かなことがあります。それが何かと言いますと、私たちが「罪人」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
私たちは罪において一つです。それが、私たち教会の最も大切な共通理解、究極的なコンセンサス・ビルディングなのかも知れません。
けれども、私たちは単なる罪人ではありません。罪人として自分を否定するのではありません。罪人だけど、神さまに赦されている。罪人だけど、イエスさまに愛されている。そんな“赦された罪人”なのです。神さまの愛の内で、悔い改めと喜びが同居している人間なのです。
聖書が言う罪って何でしょう? 罪人って何でしょう? 説明は省きます。ただ、自分のことをそう感じていたら、威張れなくなります。誇れなくなります。赦され、愛された罪人だと感じていたら、謙遜になります。人に優しくなります。自分を押し通さなくなります。そこに愛が生まれます。
イエスさまの祈りの最後の願いは、「すべての人を一つにしてください」(21節)という祈りでした。イエスさまは今も、天の上で、私たちの姿を見ながら、教会の現実を見ながら、私たちのことを一つにしてくださいと、教会を一つにしてくださいと願い、祈り続けておられ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その祈りに慰められ、励まされながら、私たちは互いに愛し合い、一つになることを目指し、祈り求めていきましょう。
[お祈りいたします]
私たちのために祈って下さる主よ。聖霊なる神さまを私たち送って下さり感謝します。聖霊なる神さま。あなたの保護と助けの中で、それぞれが違う私たちがコンセンサス・ビルディングを通して、一つとなって行きますよう、私たちを、内側から助けてください。私たちの愛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アーメン。
20.05.31주일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20~26절
오늘은 성령강림일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이전부터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셨던 성령이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이 드디어 일어난 날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그 때의 상황이 쓰여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장 1~4절)
성령강림은 제자들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하나가 되었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려고 할 때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
오늘의 성경말씀에도 “하나” 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21절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가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1~22절)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하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하나라고 할 때와 우리 인간이 하나라고 할 때에는 큰 질의 차이가 있습니다. 시간의 관계상 자세한 설명은 못하지만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하나라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거하여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마음을 따른다는 신앙입니다. 그것은 즉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또 예수님의 사랑에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주실 만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생명을 우리를 위해 바쳐 십자가 위에서 죽어주실 만큼 사랑받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 일색입니다. 그 사랑을 믿고 기뻐하여 감사하고 그사랑에 따라 우리도 사람을 사랑하여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주 예수 그리스도와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Consensus Build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Consensus Building 이라는 것은 대립을 합의로 인도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일종입니다만, 조직이나 집단이 뭔가를 정할 때에 거기에 관계하는 사람들 모두가공통 이해를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즉 공통 이해로 일치될 때까지 몇번이나 의논을 반복한다는 방법입니다. 일치되지 않는 채로 도중에서 다수결이나 독재로 결코 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나수고를 많이 필요로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교회에서도 이 방법을 취하여 여러 가지의 일을 정하고 있습니다. 단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의논을 거듭해 간다해서 모두의 의견이 같이 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니, 같이될 일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Consensus Building 이는 것은 모두의 의견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논을 하는 가운데 서로의 의견을 알게 됩니다. 의견의 차이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의 생각이나 마음도 알게 됩니다. 그 때, 자기의 의견을 계속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견을 양보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강제적인 힘에 의해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조직 전체의 일을 생각해서 양보하거나 철회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공통 이해가 만들어져 가고 결정에 이르는 것이 Consensus Building 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에 나오는 “하나” 라는 것도 “같다”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같은 것을 구하는마음은 만약 같지 않은 것이 있었다면, 다른 것이 있었다면 그것을 배제해 가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이죄인인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하나” 라는 것은 다른 것이 있어도 그것을 인정하여 받아들여 가려고 하는 하나의 공통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끼리가 거기에 함께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또 관계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생각이나 마음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신뢰와 용기와 같이 자기와 다른 것을 인정하여 받아들여 가는 인내가필요하며 자기의 의견을 양보하여 때로는 상대를 우선해 가는 다정함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다릅니다. 의견도 생각도 성격도 기호도 성별도 나이도 놓여진 상황이나 안고있는 문제도 다릅니다. 같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가 되려고 하는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서로 받아들여 함께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사랑에 깊이를 더해주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믿는 신앙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에 의거한 사랑을 깊게 하는 것은 자신의 일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자각과 그 죄인인 자신이 용서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의식이 아닐까요?
작년, 럭비 월드컵이 일본에서 개최되어 크게 열기가 고조된 적이 있었습니다. “ONE TEAM” 이라는 말이연말 유행어 대상에도 뽑힐 정도였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의 상징이지요. 럭비라는 스포츠가 “자기 희생”에 의거한 것임으로 이 “자기 희생”이라는 말도 재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류의 선수들이 숙성한 철학이나 사상을 가지고 연습에 힘쓰고 목표로 향하여 전진한 결과이며 일반인인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의 목표를 향하면 또는 사상이나 신앙을 같이하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는 것으로 일체감을 맛보는 것은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실제로는 하나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것입니다.
교회의 일을 예를 들면, 우리의 신앙도 실제로는 하나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내용이 다릅니다. 신앙 생활도 다릅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가 하나인 확실한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건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있어서 하나입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의 가장 중요한 공통 이해, 궁극적인 Consensus Building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죄인이 아닙니다. 죄인으로서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용서받고 있습니다. 죄인이지만 예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용서받은 죄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회개와 기쁨이 함께 하고 있는 인간인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란 무엇일까요? 죄인이란 무엇일까요? 설명은 생략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일을 그렇게 깨달았다면 으스대지 못하게 됩니다. 자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용서받고 사랑받은 죄인이라고 느끼고 있다면겸손하게 됩니다. 사람에게 다정하게 됩니다. 자기를 밀고 나가지 않게 됩니다. 거기에 사랑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마지막 소원은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늘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시면서, 또 교회의 현실을 보시면서 우리가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기도에 위로 받고 격려 받으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기 위햐 기도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〇讃 頌 讃頌歌 183 (1・4節)
〇献 金 ※ 毎週、各家庭で献金を献げ、教会で礼拝を守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なら、まとめて献げてください。
〇感謝の祈り
主なる神さま。今ここに、それぞれが感謝と献身のしるしとして献金を献げました。この献げ物を通して、あなたへの感謝と信頼を新たにす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そして、与えられた全てのものを通して、あなたの栄光をあらわすことが出来ますように、私たちをお導き下さい。今日よりの新たな一週間もあなたと共に歩ませてください。この困難な時期を耐える力を私たちにお与えください。また、あなたとのつながり、そしてあなたを信じる人々とのつながりがより深まりますように。
主イエス・キリスト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アーメン。
〇頌 栄 讃頌歌 5
〇主祈祷 主の祈り
天にまします我らの父よ。
願わくは、御名をあがめさせたまえ。御国をきらたせたまえ。
みこころの天になるごとく、地にもなさせたまえ。
我らの日用の糧を、今日も与えたまえ。
我らに罪を犯す者を、我らが赦すごとく、我らの罪をも赦したまえ。
我らをこころみにあわせず、悪より救いだしたまえ。
国と力と栄えとは、限りなくなんじのものなればなり。
アーメ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