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곁에서 이 세상에 오시고 참 인간으로서 나날의 생활을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다 이루신 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곁에 올라가셨습니다. 이러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십자가의 수난, 부활의 영광, 그리고 승천을 기억하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지금도 이 세상에 있어서 여러 죄의 유혹과 싸우는 교회에 눈여겨보아 주시고 축복해 주시옵소서.
오늘의 성경 말씀에는 먼저 점을 치는 여종이 나옵니다. 여기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성”이 “노예”였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노예는 주인에게 지배되며 주인의 마음대로 쓰여지고 소용이 없어지면 버려집니다. 그녀의 주인들은 그녀에게 점을 치게 하고서 그것으로 많은 이익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들린 점치는 귀신은 그 주인들이 돈벌이를 하기에 용이한 계시나 탁선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점치는 귀신, 악령의 일입니다. 악령이라고 하면 인간에게 악한 것을 할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점치는 귀신은 인간의 노예가 되어 섬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따르는 게 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주인, 지배자가 되어서 하나님마저도 노예로 삼는 죄로 끌어들여서 그것으로 사람을 죄의 노예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령의 목적은 늘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인간에게 괴로움을 주는 방법으로 하던지, 또는 마치 인간에게 봉사는 것 처럼 보이는 방법으로 하는지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바울 일행에게 착 달라붙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점치는 귀신이 그렇게 그녀에게 소리 지르게 했습니다. 틀림없이 그녀의 말은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고명한 점쟁이인 그녀가 그렇게 소리 지르는 것은 전도에는 좋은 선전이 되었지요. 그녀가 소리 지르는 것을 듣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바울 일행의 주위에 모여 와서 그 이야기를 듣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녀에게서 그 점치는 귀신을 몰아내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했을까요?
바울은 어떻게든 사람이 모이면 그것이 전도의 기회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엇으로 뭐 때문에 모이는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점의 세계와의 차이, 즉 성령의 일과 악령의 일의 구별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점쟁이의 말로 모이는 것은 만약 그 말이 형식적으로는 옳다고 해도 거기에 생기는 세계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하나님마저도 노예로 이용하려고 하는 세계입니다. 자기가 바꿔지는게 아니라 주위를 바꾸는 것으로 운명을 호전시키려고 하는 세계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라는 말에 속지 않고 악령의 일을 물리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여성에게서 점치는 귀신을 몰아냈다고 해서 투옥되어 버립니다. 관리들은 바울 일행을 제대로 취조하지도 않고 매로 치고 족쇄를 채워서 깊은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이렇게 부당한 괴로움을 받았는데 이 괴로움 속에서도 그들이 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찬양하면서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불가사의한 평안이 있습니다. 캄캄한 감옥 안 거기에서도 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평안과 빛은 그들 안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이 감옥에 붙잡혔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갔습니다. 25절에 “죄수들이 듣더라” 라고 쓰여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문들이 다 열리고 죄수들을 매었던 쇠사슬도 벗겨져 버리고 도망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수들은 누구 한 사람도 그곳에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곳에서 도망치는 것보다는 바울과 실라 곁에 그대로 남아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의 찬송과 기도는 다른 죄수들의 마음을 그만큼 깊이 사로잡아 그들에게 평안과 빛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이 찬송과 기도, 거기에 있는 평안과 밝음, 그것을 가져다 준 것이야말로 성령입니다. 옥중이라는 괴로움 속에 있었지만 평안과 밝음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와 은혜가 빌립보의 옥중 안에 흘러 넘쳤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한 사람과 그 가족 전원이 구원을 얻게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감옥의 간수입니다. 그는 큰 지진으로 옥문이 다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쳤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죄수가 도망치면 모든 책임을 간수가 지고 벌을 받아야 합니다. 가족들까지도 그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절망에 빠져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바울 일행의 찬송과 기도가 가져다준 평안 가운데 죄수들은 단 한 사람도 도망치지 않고 그곳에 그대로 다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절망 가운데 있었던 간수에게는 바로 기적과도 같은 구원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기적적인 구원을 체험했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것으로 감옥 속에 있는 바울이나 실라야말로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또 반대로 옥 밖에서 그 망을 보고 있던 자기야말로 실은 자유롭지 못한 붙잡혀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의 지배를 바라보고 그것에 몸을 맡겨 사는 것이야말로 참된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러한 참된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의 참된 자유과 거기에 비해 오히려 자기의 붙잡혀 있는 자유롭지 못한 모습에 깜짝 놀란 이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해야만 구원을 받으리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 자라고 깨닫고 구원을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에 필요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참 구세주이시며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예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도 목숨을 건지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이란 참으로 몸을 바치며 맡길 만한 참 주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 분 밑에서는 괴로움 속에 있더라도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다, 그러한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몸을 맡기는 것이야말로 구원인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구원은 믿는 우리들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에도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믿으면 가족도 자동적으로 구원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몸을 맡긴다는 것은 자기가 가장 소중한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 거기에는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 자식들, 가족이 당연히 포함됩니다. 가장 소중한 가족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거기에 성령께서 일하시고 역사해 주실 것을 기도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이 간수가 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가족들 모두가 바울이 말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령의 역사, 은혜는 우리에게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참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물론 일상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특히 코로나 상태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제약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유 속에서 기뻐하면서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디 하나님 앞에서 더 자유롭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걸어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2021年5月16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黙祷をもって礼拝を始めます。
〇招 詞 イザヤ書 55章 6~7節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
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55:6 主を尋ね求めよ、見いだしうるときに。呼び求めよ、
近くにいますうちに。
55:7 神に逆らう者はその道を離れ/悪を行う者はそのたくらみを
捨てよ。主に立ち帰るならば、主は憐れんでくださる。わたし
たちの神に立ち帰るならば/豊かに赦してくださる。
〇讃 頌 讃頌歌 522(1, 2, 5節)
〇祈 祷 お祈りいたします。
하늘에 계시고 즐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부활절 마지막 주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배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곁에서 이 세상에 오시고 참 인간으로서 나날의 생활을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다 이루신 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곁에 올라가셨습니다. 이러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십자가의 수난, 부활의 영광, 그리고 승천을 기억하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지금도 이 세상에 있어서 여러 죄의 유혹과 싸우는 교회에 눈여겨보아 주시고 축복해 주시옵소서.
天にいます、いつも私たちと共にいて下さる神さま。
復活節最後の主日もあなたの招きに与り、礼拝の場に集うことが出来たことを感謝します。
御子イエス・キリストはあなたのもとからこの世界においでになり、真の人間として、日々の生活を過ごされました。そして、救いの御業を成し遂げられた後、天におられる神さまのもとに昇られました。このような主イエス・キリストの生涯、十字架の受難、復活の栄光、そして、昇天を覚えて感謝します。
どうか、今もなお地上にあって、様々な罪の誘惑と戦う教会に、目を留めて下さり、祝福して下さい。教会が主イエス・キリストをいしずえとして、堅く立ち、この時代と世界にあなたの豊かな恵みと憐れみを証しすることが出来ますように。私たちの果たすべき務めを示して下さり、私たちが必要とする知恵と力をお与え下さい。
あなたの御心が天において実現しているように、この地上でも現実のものとなりますように。主よ、聖霊を私たちのもとに送って下さい。私たちはあなたの御国を待ち望みます。このコロナ禍にあっても耐え忍ぶ信仰をお与え下さい。
父なる神よ。主の慈しみは深く、貴いゆえに、人生に疲れ果てた私たちは、あなたの恵みの翼の下に逃れようと、ここに集いました。どうぞ、命の源であられる主よ、私たちを休ませて下さい。そして、また新たな命の御言葉を通して、あらたに歩み出す、勇気と力をお与え下さい。
今日、ここに集えなかった姉妹兄弟の上にも、私たちと同じ祝福が降り注がれますように。特に、病の中にある方や、コロナ禍によって、経済的な不安、精神的な苦しみの中にある方を支えて下さい。特に、病床の中にある姉妹兄弟に大いなる癒やしをお与え下さい。
子どもたちの礼拝を、教会学校を祝福して下さい。神さまと人を愛する者へと成長させて下さい。
また、それぞれが祈りを携え、ここに集いましたから、どうか、すべての祈りをこの祈りと共に聴き上げて下さい。そして、祈りを共にする西部地方会の各教会に、特に三次教会の上に、主の豊かな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すべての祈りと併せて、このお祈りを、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〇聖書奉読 使徒言行録 16章 16~30節
16:16 わたしたちは、祈りの場所に行く途中、占いの霊に取りつかれている女奴隷に出会った。この女は、占いをして主人たちに多くの利益を得させていた。
16:17 彼女は、パウロやわたしたちの後ろについて来てこう叫ぶのであった。「この人たちは、いと高き神の僕で、皆さんに救いの道を宣べ伝えているのです。」
16:18 彼女がこんなことを幾日も繰り返すので、パウロはたまりかねて振り向き、その霊に言った。「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命じる。この女から出て行け。」すると即座に、霊が彼女から出て行った。
16:19 ところが、この女の主人たちは、金もうけの望みがなくなってしまったことを知り、パウロとシラスを捕らえ、役人に引き渡すために広場へ引き立てて行った。
16:20 そして、二人を高官たちに引き渡してこう言った。「この者たちはユダヤ人で、わたしたちの町を混乱させております。
16:21 ローマ帝国の市民であるわたしたちが受け入れることも、実行することも許されない風習を宣伝しております。」
16:22 群衆も一緒になって二人を責め立てたので、高官たちは二人の衣服をはぎ取り、「鞭で打て」と命じた。
16:23 そして、何度も鞭で打ってから二人を牢に投げ込み、看守に厳重に見張るように命じた。
16:24 この命令を受けた看守は、二人をいちばん奥の牢に入れて、足には木の足枷をはめておいた。
16:25 真夜中ごろ、パウロとシラスが賛美の歌をうたって神に祈っていると、ほかの囚人たちはこれに聞き入っていた。
16:26 突然、大地震が起こり、牢の土台が揺れ動いた。たちまち牢の戸がみな開き、すべての囚人の鎖も外れてしまった。
16:27 目を覚ました看守は、牢の戸が開いているのを見て、囚人たちが逃げてしまったと思い込み、剣を抜いて自殺しようとした。
16:28 パウロは大声で叫んだ。「自害してはいけない。わたしたちは皆ここにいる。」
16:29 看守は、明かりを持って来させて牢の中に飛び込み、パウロとシラスの前に震えながらひれ伏し、
16:30 二人を外へ連れ出して言った。「先生方、救われるためにはどうすべきでしょうか。」
16:31 二人は言った。「主イエスを信じ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も家族も救われます。」
16:32 そして、看守とその家の人たち全部に主の言葉を語った。
16:33 まだ真夜中であったが、看守は二人を連れて行って打ち傷を洗ってやり、自分も家族の者も皆すぐに洗礼を受けた。
16:34 この後、二人を自分の家に案内して食事を出し、神を信じる者になったことを家族ともども喜んだ。
16:35 朝になると、高官たちは下役たちを差し向けて、「あの者どもを釈放せよ」と言わせた。
16:36 それで、看守はパウロにこの言葉を伝えた。「高官たちが、あなたがたを釈放するようにと、言ってよこしました。さあ、牢から出て、安心して行きなさい。」
16:37 ところが、パウロは下役たちに言った。「高官たちは、ローマ帝国の市民権を持つわたしたちを、裁判にもかけずに公衆の面前で鞭打ってから投獄したのに、今ひそかに釈放しようとするのか。いや、それはいけない。高官たちが自分でここへ来て、わたしたちを連れ出すべきだ。」
16:38 下役たちは、この言葉を高官たちに報告した。高官たちは、二人がローマ帝国の市民権を持つ者であると聞いて恐れ、
16:39 出向いて来てわびを言い、二人を牢から連れ出し、町から出て行くように頼んだ。
16:40 牢を出た二人は、リディアの家に行って兄弟たちに会い、彼らを励ましてから出発した。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주는 자라
16: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6: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16: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16: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16: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16: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16: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16: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16: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16: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16: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16: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16: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16: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16:36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16: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16:38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16: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16: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〇説 教
「聖霊がもたらす自由」(要約版) 使徒言行録第16章16~40節
今日の聖書箇所にまず、占いをする女奴隷が出て来ます。「占いの霊に取りつかれていた女」が「奴隷」であったということは象徴的なことです。奴隷は、主人に支配され、主人の思いのままに用いられ、道具とされ、そして用がなくなれば捨てられます。彼女の主人たちは、彼女に占いをさせて、それによって多くの利益を得ていました。彼女に取りついていた占いの霊は、その主人たちの金儲けに都合のよいお告げ、託宣を語っていたからです。これが占いの霊、悪霊の働きです。悪霊というと、人間に対して悪いことをするもののように思いますが、そればかりではありません。この占いの霊は人間の奴隷となって仕えているように見せかけて、実は、人々を真の神さまに従うのではなく、自分が主人、支配者になって神さまをも奴隷にするような罪へと引きずり込み、それによって人を罪の奴隷にしているのです。悪霊の目的は常にそこにあります。それを、人間に苦しみを与える仕方でするか、あるいはあたかも人間に奉仕するように見える仕方でするか、の違いです。
さて、この占いの霊に取り憑かれた女奴隷が、パウロたちにまとわりついて、「この人たちは、いと高き神の僕で、皆さんに救いの道を宣べ伝えているのです」と、叫ぶのです。占いの霊がそのように彼女に叫ばせました。確かに、彼女の叫びは正しいのです。そして、高名な占い師である彼女がそのように叫び続けていることは、伝道には良い宣伝になったと思います。彼女の叫びを聞いて、おそらく多くの人々がパウロらの周りに集まって来て、その話を聞こうとしたに違いありません。それなのに、パウロは彼女からその占いの霊を追い出しました。どうして、そうしたのでしょうか。
パウロは何でも人が集まればそれが伝道の機会となる、とは考えなかったのです。何によって、何のために集まるのかが問題なのです。それはキリストの福音と占いの世界の違い、すなわち、聖霊の働きと悪霊の働きの区別をはっきりと意識していたのです。
占い師の言葉によって集まるのは、たとえその言葉が形式的には正しかったとしても、そこに生まれるのは世界は、自分が主人となって、神さまをも自分の奴隷として利用しようとする世界です。自分が変えられるのでなく、周りを変えることで運命を好転させようとする世界です。パウロはそのことをはっきりと意識していたために、「この人たちは、いと高き神の僕で、皆さんに救いの道を宣べ伝えているのです」という言葉に騙されることなく、悪霊の働きを退けたのです。
しかし、パウロがこの女性から占いの霊を追い出したことによって、投獄されることになってしまいます。町の高官たちはパウロたちをよく調べもせずに鞭で打ち、足かせをはめて、一番奥の牢に閉じ込めたのです。
パウロたちはこのように不当な苦しみを受けたわけですが、この苦しみの中で、彼らがしていたのは、讃美の歌を歌い、神さまに祈ることでした。彼らは、この状況の中で、神さまを褒め称える讃美を歌っていたのです。讃美しながら祈る彼らの姿には、不思議な平安がありました。真っ暗な牢獄の中でも、そこには光があります。そしてこの平安と光は、彼らの中だけにあったのではなく、この牢獄に捕われていた全ての人々にも伝わって行きました。25節に「ほかの囚人たちはこれに聞き入っていた」とある通りです。
すると突然、大地震が起こりました。牢の戸がみな開き、囚人たちを繋いでいた鎖も全て外れてしまって、逃げ出せ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けれども、囚人たちは誰一人、そこを動こうとしませんでした。それは彼らが、逃げ出すよりも、パウロとシラスのもとに留まっていたいと思ったということです。パウロたちの讃美の歌と祈りは、他の囚人たちの心をそれほどまでに深く捕え、彼等にも平安と光をもたらしたのです。
この讃美の歌と祈り、そこにある平安と明るさ、それをもたらしたものこそ聖霊です。獄中という苦しみの中にあっても、平安と明るさを与えて下さる聖霊の働き、恵みが、フィリピの獄中に満ちあふれました。そして、このことを通して、さらに一人の人とその家族全員とが救いにあずかるという出来事が起こったのです。
その人とはこの獄の看守です。彼は大地震で牢の戸がみな開いてしまったのを見て、囚人たちが逃げてしまったと思いました。囚人が逃亡したら、看守が責任を問われ、罰を受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家族にもその罪が問われます。それで、絶望の内に自殺しようとしたのです。
その時、パウロは「自害してはいけない。わたしたちは皆ここにいる」と声をかけました。パウロらの讃美と祈りがもたらした平安の内に、囚人たちは一人も逃げ出すことなくそこに留まっていたのです。このことは、もはや死ぬしかないという絶望の中にあったこの看守にとって、まさに奇跡的な救いの宣言でした。
彼は、単に奇跡的な救いを体験しただけ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彼はこのことによって、牢の中で足枷をはめられて入れられているパウロやシラスこそ、本当に自由な者であることを、また、逆に牢の外でその番をしている自分が、実は不自由な、捕われた者であることを知らされたのです。
生けるまことの神さまの御支配を見つめ、それに身を委ねて生きるところにこそ本当の自由があるのです。聖霊はそのような本当の自由を私たちに与えるのです。
パウロたちの本当の自由と、自らの捕われた姿に愕然としたこの看守は、パウロとシラスの前にひれ伏し、「先生方、救われるためにはどうすべきでしょうか」と尋ねました。彼は、自分が救われなければならない者であることに気づき、救いを切に願ったのです。二人は、「主イエスを信じ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も家族も救われます」と告げました。
私たちが救われるために必要なのは、主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です。私たちのために十字架にかかって死んで下さり、復活して下さった主イエス・キリストこそ、真の救い主であり、真の神さまであられることを信じて、そのイエスさまに自分の人生を委ねることです。救いとは、苦しみがなくなることでも、命が助かることでもありません。救いとは、本当に身を献げ委ねるにたる真の主人を見出すことです。この方の下でなら、本当に生き生きと、喜びをもって仕えることができる、そしてこの方の下でなら、苦しみの中にあっても讃美を歌い、祈ることが出来る、そういう真の主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と出会い、身を委ねることこそが救いなのです。
「そうすれば、あなたも家族も救われます。」 この救いは、信じる私たちのみに与えられるのではなく、私たちの家族にも及んでいきます。それは、一人が信じれば家族も自動的に救われていく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イエスさまを信じ、イエスさまに身を委ねるとは、自分の一番大切なものを委ねるということです。自分にとって一番大切なもの、そこには愛する妻や夫、子供、家族が当然含まれます。一番大切な家族を、イエスさまに委ねるのです。そこに聖霊が働いて下さり、御業を行って下さることを祈り求めるのです。
この看守がしたのはまさにそういうことでした。彼は真夜中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パウロたちを自分の家に招き、家族の者たち皆がパウロが語る主の御言葉を聞き、洗礼を受け、主イエス・キリストの救いにあずかる者となったのです。
皆さん、この聖霊の御業、恵みは、私たちにも向けられております。私たちもまたキリストによって救われ、真の自由を得ているのです。もちろん日々にはさまざまな制約があります。今は特に、コロナ禍のために、私たちの日々は制約の中にあります。しかし、それでもなお、私たちは神さまの前で最も大事な自由を得ているのです。その自由の内に喜びながら歩むことが出来るのです。どうか、神さまの前でもっとのびのびと神の子として歩まれますようお祈りいたします。
[お祈り致します]
天の父なる神さま。あなたは私たちに「明日のことで思い悩む必要ないと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なぜなら、あなたご自身が私たちの明日を責任を持って担ってくださるからです。それなのに私たちはそのことを忘れ、頼りにならないものに心向けて、心にいつも不安を抱えております。どうか、そのような私たちに聖霊を送ってくださり、あなたを讃美し、あなたに祈る力を与えてください。そして、たとえ困難な状況にあったとしても、そこであなたの力が十分に発揮されることを信じることが出来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
主イエス・キリスト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アーメン。
“성령이 가져다 주는 자유” (요약판) 사도행전 16장 16~40절
오늘의 성경 말씀에는 먼저 점을 치는 여종이 나옵니다. 여기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성”이 “노예”였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노예는 주인에게 지배되며 주인의 마음대로 쓰여지고 소용이 없어지면 버려집니다. 그녀의 주인들은 그녀에게 점을 치게 하고서 그것으로 많은 이익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들린 점치는 귀신은 그 주인들이 돈벌이를 하기에 용이한 계시나 탁선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점치는 귀신, 악령의 일입니다. 악령이라고 하면 인간에게 악한 것을 할거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점치는 귀신은 인간의 노예가 되어 섬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따르는 게 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주인, 지배자가 되어서 하나님마저도 노예로 삼는 죄로 끌어들여서 그것으로 사람을 죄의 노예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령의 목적은 늘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인간에게 괴로움을 주는 방법으로 하던지, 또는 마치 인간에게 봉사는 것 처럼 보이는 방법으로 하는지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바울 일행에게 착 달라붙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점치는 귀신이 그렇게 그녀에게 소리 지르게 했습니다. 틀림없이 그녀의 말은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고명한 점쟁이인 그녀가 그렇게 소리 지르는 것은 전도에는 좋은 선전이 되었지요. 그녀가 소리 지르는 것을 듣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바울 일행의 주위에 모여 와서 그 이야기를 듣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녀에게서 그 점치는 귀신을 몰아내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했을까요?
바울은 어떻게든 사람이 모이면 그것이 전도의 기회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엇으로 뭐 때문에 모이는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점의 세계와의 차이, 즉 성령의 일과 악령의 일의 구별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점쟁이의 말로 모이는 것은 만약 그 말이 형식적으로는 옳다고 해도 거기에 생기는 세계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하나님마저도 노예로 이용하려고 하는 세계입니다. 자기가 바꿔지는게 아니라 주위를 바꾸는 것으로 운명을 호전시키려고 하는 세계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라는 말에 속지 않고 악령의 일을 물리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여성에게서 점치는 귀신을 몰아냈다고 해서 투옥되어 버립니다. 관리들은 바울 일행을 제대로 취조하지도 않고 매로 치고 족쇄를 채워서 깊은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은 이렇게 부당한 괴로움을 받았는데 이 괴로움 속에서도 그들이 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찬양하면서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불가사의한 평안이 있습니다. 캄캄한 감옥 안 거기에서도 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평안과 빛은 그들 안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이 감옥에 붙잡혔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갔습니다. 25절에 “죄수들이 듣더라” 라고 쓰여 있는 그대로입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문들이 다 열리고 죄수들을 매었던 쇠사슬도 벗겨져 버리고 도망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수들은 누구 한 사람도 그곳에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곳에서 도망치는 것보다는 바울과 실라 곁에 그대로 남아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의 찬송과 기도는 다른 죄수들의 마음을 그만큼 깊이 사로잡아 그들에게 평안과 빛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이 찬송과 기도, 거기에 있는 평안과 밝음, 그것을 가져다 준 것이야말로 성령입니다. 옥중이라는 괴로움 속에 있었지만 평안과 밝음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와 은혜가 빌립보의 옥중 안에 흘러 넘쳤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한 사람과 그 가족 전원이 구원을 얻게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감옥의 간수입니다. 그는 큰 지진으로 옥문이 다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쳤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죄수가 도망치면 모든 책임을 간수가 지고 벌을 받아야 합니다. 가족들까지도 그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절망에 빠져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바울 일행의 찬송과 기도가 가져다준 평안 가운데 죄수들은 단 한 사람도 도망치지 않고 그곳에 그대로 다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절망 가운데 있었던 간수에게는 바로 기적과도 같은 구원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기적적인 구원을 체험했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것으로 감옥 속에 있는 바울이나 실라야말로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또 반대로 옥 밖에서 그 망을 보고 있던 자기야말로 실은 자유롭지 못한 붙잡혀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의 지배를 바라보고 그것에 몸을 맡겨 사는 것이야말로 참된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러한 참된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 일행의 참된 자유과 거기에 비해 오히려 자기의 붙잡혀 있는 자유롭지 못한 모습에 깜짝 놀란 이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해야만 구원을 받으리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 자라고 깨닫고 구원을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에 필요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참 구세주이시며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예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도 목숨을 건지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이란 참으로 몸을 바치며 맡길 만한 참 주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 분 밑에서는 괴로움 속에 있더라도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다, 그러한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몸을 맡기는 것이야말로 구원인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구원은 믿는 우리들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에도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믿으면 가족도 자동적으로 구원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몸을 맡긴다는 것은 자기가 가장 소중한 것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 거기에는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 자식들, 가족이 당연히 포함됩니다. 가장 소중한 가족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거기에 성령께서 일하시고 역사해 주실 것을 기도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이 간수가 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가족들 모두가 바울이 말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령의 역사, 은혜는 우리에게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참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물론 일상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특히 코로나 상태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제약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유 속에서 기뻐하면서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디 하나님 앞에서 더 자유롭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걸어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〇讃 頌 讃頌歌 325(1, 3節)
〇献 金 ※ 毎週、各家庭で献金を献げ、教会で礼拝を守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なら、
まとめて献げてください。
〇報 告
①広島県に緊急事態宣言が出されましたので、解除される(予定では5月31日)まで教会を閉
鎖します。主日礼拝は継続しますが、非公開とさせて頂きます。主日礼拝の説教映像と礼拝
式順・説教を教会ホームページの「教会活動」に当日の午後1時頃に掲載いたしますので、
それを用いて、各家庭で礼拝をお守り下さい。
②聖書研究会は緊急事態宣言が解除されるまで、休会します。
③来週は、聖霊降臨主日です。
④5月30日(主)の午後4時から、西部地方会第37回定期総会をオンラインにて開催いたしま
す。
〇感謝の祈り
主なる神さま。あなたの限りない恵みに感謝します。今ここに、それぞれが感謝と献身のしるしとして献金を献げました。、この献げ物を通して、あなたへの感謝と信頼を新たにす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そして、与えられた全てのものを通して、あなたの栄光をあらわすことが出来ますように、私たちをお導き下さい。今日よりの新たな一週間もあなたと共に歩ませてください。この困難な時期を耐える力を私たちにお与えください。また、あなたとのつながり、そしてあなたを信じる人々とのつながりがより深まりますように。
主イエス・キリストの御名によって祈ります。アーメン。
○頌 栄 讃頌歌 1
〇主祈祷 主の祈り
天にまします我らの父よ。
願わくは、御名をあがめさせたまえ。御国をきらたせたまえ。
みこころの天になるごとく、地にもなさせたまえ。
我らの日用の糧を、今日も与えたまえ。
我らに罪を犯す者を、我らが赦すごとく、我らの罪をも赦したまえ。
我らをこころみにあわせず、悪より救いだしたまえ。
国と力と栄えとは、限りなくなんじのものなればなり。
アーメ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