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은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전에 들른 곳에서 바울이 거기에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가진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가는 곳마다 바울은 예루살렘행을 중지하도록 충고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울은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령에게 듣지도 않고 인간적인 감정이나 자신들의 판단으로 말하고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두로에서는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자 말라 하더라”(4절) 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 가이사라에서도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성령의 말씀으로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리라 예언합니다. 이 아가보라는 사람은 사도행전 11장에도 나오는데 대기근을 예언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가이사라에서 바울이 체재하고 있을 때 아가보가 찾아온 곳이 빌립의 집이었습니다. 빌립은 사도행전 6장에 쓰여 있는 선택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장에는 이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구원으로 인도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그 사건이 교회를 이방인 전도로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빌립과 더불어 지금까지 바울과 동행해 온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그만두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즉 바울을 만류한 사람들은 결코 인간적인 생각으로 바울을 만류한 게 아니라 신앙적인 생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만류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에 의하여 같은 것을 들으면서도 바울은 가겠다고 하고, 두로나 가이사라의 사람들 그리고 동행자들은 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둘 중에서 어느 쪽이 성령께 묻고 올바른 판단을 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됩니다만, 그것을 계기로 로마에 가게 됩니다. 비록 죄수였지만,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으로부터 로마병들이 지켜주는 형태로 로마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의 판단이 올발랐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히 단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바울의 판단이 올발랐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만, 만약 바울이 사람들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실제로 어떻게 되었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일이 진행되었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성령께 물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를 수 있을까요? 그 판단은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성령께 묻는다고 해도 확실히 가는 길을 제시해 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며, 그 판단에 고민할 때도 있습니다. 고민하면서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13절) 라고 하면서 예루살렘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바울 자신도 예루살렘행을 결정했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아직 고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의 판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보에도 해당됩니다. 우리도 많이 고민하면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선택해 갑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사람들을 슬프게 하면서도 나아가야만 할 때가 있겠지요. 그리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과거의 판단이 올발랐는지 생각하면서 괴로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의 판단이 잘 못된 것은 아니었는지, 기도하면서 결정하긴 했지만 자기의 생각이 앞서갔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렇게 괴로워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내린 판단이 정말로 올발랐는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바울도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모한 얘기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내리는 판단이 올발랐는지 오류였는지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얼마나 기도했는지, 하나님께 구했는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많은 인간들이기 때문에 기도하면서도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듣고 올바르게 판단했을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 이끌어 주신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실패해도 되고, 잘못해도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는 우리의 판단이나 행동에 따라 바뀌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을 읽어 보면, 우리가 성령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가 속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른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로봇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시된 하나님의 마음에 자기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스스로 판단할 자유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유”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책임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자기가 내린 판단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대로 우리는 자신이 내린 판단의 결과에 대해서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요한 판단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그 판단을 내리면 될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전혀 모르는 마을을 여행할 때, 미리 그 마을의 가이드북이나 지도를 준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을 즐기기는 커녕 불안한 여행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가이드북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한 가이드북으로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범이 있다는 것을 바울의 말씀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13절의 후반 부분입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절)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바울의 굳은 결심은 “주 예수를 위한” 것으로 예루살렘행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위할 생각으로 예루살렘행을 말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생각해서 그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주 예수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간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 이상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14절) 라고 하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이 가이드북은 단지 우리에게 목적지까지의 길을 가르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범에 따라 나갈 것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그 방법 뿐만 아니라, 그것을 완수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 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힘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함없이 우리 위에 성령을 통해 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을 통해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하여 예수님의 모범에 따라 응답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틀림없이 우리 앞에도 곤란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 주십니다. 그 곤란한 일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2021年8月1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로마서(ローマ) 8章 3, 5~6節
〇讃 頌 讃頌歌 540(1, 4節)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聖書奉読 使徒言行録 21章 1~16節
〇説 教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主イエスの名のために)」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384(1, 3節)
〇献 金
〇報 告
〇感謝祈祷
〇頌 栄 讃頌歌 1
〇祝 祷
【 2021年 8月 1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
「主イエスの名のために」 使徒言行録 21章 1~16節
今日の聖書箇所は、エルサレムに向かう前に立ち寄った場所で、パウロがその地に住むキリスト者たちと交わりを持ったことが記されています。聖書を読みますと、行く先々で、パウロはエルサレム行きを中止するように忠告を受けるのです。
パウロは聖霊の導きに委ねてここまで来ました。苦難の待つエルサレムに行くことが神さまの御旨であるとパウロは信じていたわけですが、エルサレム行きを反対する人びとは、聖霊に聞かず、人間的な感情や自分たちの判断で言っているのかと言いますと、そうではないのです。
ティルスでは、「彼らは“霊”に動かされ、エルサレムに行かないようにと、パウロに繰り返して言った」(4節)とあります。また、またカイサリアにおいても、預言することのできるアガボという人が聖霊のお告げとしてパウロがエルサレムで逮捕されることを語ります。このアガポという人は使徒言行録の11章にも出てきた人で、大飢饉を預言した人です。そしてまた、カイサリアで、パウロが滞在していて、アガボが訪ねて来たのは、フィリポの家でした。フィリポは使徒言行録6章に記されている、選ばれた7人の執事のうちの一人です。そして、使徒言行録8章には、このフィリポがエチオピアの宦官を救いに導いたことが記されています。その出来事が、教会を異邦人伝道へと推し進めるきっかけになったわけですが、このフィリポやさらにこれまでパウロと同行して来た人びとが、エルサレムへ行くことをやめるようにと願ったのです。つまり、パウロを引き留めた人々は決して、人間的な思いでパウロを引き留めたのではなく、むしろ信仰的な思いで、聖霊の導きの中で引き留めたのです。
ですから、聖霊によって同じことを聞きながらも、パウロは行くといい、ティルスやカイサリアの人々、そして同行者たちは行くなと言っているのです。皆がそれが御心だと思って言っているのです。それぞれに御心と思っていたわけですね。では、この両者はどちらが聖霊に聞き、正しい判断をし、聖霊の導きに従ったと言えるのでしょうか。
結果的に見れば、パウロがエルサレムに行き、逮捕されるのですが、それを契機にローマに行くことになります。しかも、囚人という形ではありますが、パウロを殺そうとするユダヤ人からローマ兵に守られて、ローマに行くことになるわけですね。
そうすると、パウロの判断が正しく、聖霊の導きに従ったのだと言えるのでしょうか。
それは、単純には決めつけられないと思います。結果的には、パウロの判断が正しかったとは言えますが、もし、パウロが人びとの忠告を聞いていたら、実際のところどうなっていたかは誰にも分かりません。それこそ、神さまの御計画の中で、事が進んで行ったとしか言えないのです。
では、私たちはどうすれば、聖霊に聞き、神さまの導きに従うことが出来るのでしょうか? その判断というのは、実際には大変難しいのです。私たちが祈りながら聖霊に聞いたとしても、はっきりと行く道を示される時もあれば、その判断に悩むこともあるのです。悩みながらギリギリの判断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時もあるのです。
パウロは、「泣いたり、わたしの心をくじいたり、いったいこれはどういうことですか」(13節)とエルサレム行きに反対する人びとに言っています。パウロ自身、エルサレム行きを決めたと言っても、心の奥底ではまだ悩んでいるのです。実際、自分の判断のために、多くの人々を悲しませているのも事実です。
これは、私たちの歩みにも当てはまります。私たちも本当に悩みながら自分の行くべき道を選択して行きます。私たちもパウロのように人々を悲しませながらも進む時もあるでしょう。そしてまた、あとから考えて、過去の判断が正しかったのか迷う時もあります。やはりあの時の判断は失敗だったのか、祈って決めたはずなのに、自分の思いが先走っていたのだろうか?そう悩む時もあります。私たちが信仰をもってなした判断が本当に正しいのか、分からない時があるのです。パウロもそうだったと思います。
ただ、ここで言えることは、そういったすべてのことを含めて、私たちは神さまに委ねて生きるのです。大胆に言えば、私たちの判断の正しさや誤りは大きな問題ではないのです。ただただ、どれほど祈ったか?神さまに求めたか?が問題なのです。私たちは罪深い者ですから、祈りながらも、自分の勝手な思いを捨てきれず、神さまの御心を聞き取ることが出来ない時もあるのです。しかし、それでも祈って求めたのであれば、神さまがすべてを良いものとして下さるのです。私たちが誤ることなく御心を聞きとり、正しく判断をした時だけ、神さまが私たちを助け、導いてくださるとしたら、私たちの未来は暗いものになってしまいます。皆さん、私たちは失敗して良いし、間違っても良いのです。こう言いますと無責任のように思うかもしれませんが、でも、神さまの御計画、そして恵みは私たちの判断や行動によって変わるものではないのです。
今日の聖書箇所を読みますと、私たちが聖霊に聞く、神さまの御旨に従うと言う時に、神さまの御計画によって、私たちが縛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はないことが分かります。神さまに従うと言っても、私たちが神さまのロボットになるということではないのです。だから示された神さまの御心に自分がどのように応答するのかは、自分で判断する自由が与えられているのです。もちろん「自由」であると言うことは、その一方で私たちに責任が委ね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もあります。私たちは自らが下した判断に対して、神さまの前で責任を負っているのです。だから逆に、私たちは自らの下した判断の結果に対して、神さまに責任を求めてはならないのです。
それではこのような重要な判断について、私たちはどのようにその判断を下して行けばよいのでしょうか。私たちが神の御心に対して正しい判断をくだすためにはどうしたらよいのでしょうか。
私たちは見ず知らない町に旅行する時、あらかじめその町のガイドブックや地図を用意するでしょう。それがなければ、旅行を楽しむどころか、不安な旅になってしまいます。パウロによって、このガイドブックはイエスさまであったのです。
私たちが神さまの御心を正しく判断するためのガイドブックとしてイエスさまが示された模範があることを、パウロの言葉から学ぶことが出来ます。
それが13節の後半部分です。「主イエスの名のためならば、エルサレムで縛られることばかりか死ぬことさえも、わたしは覚悟しているのです。」(13節)
「主イエスの名のためならば」、パウロの固い決心は、「主イエスのためになる」ことして、エルサレム行きを考えていたのです。人びとは、パウロのことを考えてエルサレム行きを止めようとしました。でも、パウロは自分のことではなく、イエスさまのことを考え、それがイエスさまのためになると信じていたわけです。
パウロに「主イエスのためにエルサレムに行く」と言われれば、人びとはもうそれ以上言うことが出来ません。それで人びとは「主の御心が行われますように」(14節)と言って、口をつぐみました。
ただ、私たちがここで忘れてはならないことがもう一つあります。それはこのガイドブックは単に私たちに目的地までの道順を教えるためだけのものではないと言うことです。なぜなら、イエスさまはご自身の模範に従って歩もうと決心する人々にその方法だけではなく、それを成し遂げることが出来る力を与えて下さるからです。
皆さん、私たちがイエスさまの模範に従おうとする時、神さまは私たちに聖霊を送って私たちを助けて下さいます。主イエス・キリストの力は、今も昔も変わりなく私たちの上に聖霊を通して働いて下さるのです。ですから、私たちも聖書を通して示される神さまの御心に対して、イエスさまの模範に従って応答することが可能なのです。
確かに、私たちの前にも困難な出来事が待ち構えてい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イエスさまが私たちに聖霊を送って下さいます。その困難な出来事に立ち向かうことの出来る力を与えて下さるのです。アーメン。
【2021년 8월 1일 주일예배(요약판)】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사도행전 21장 1~16절
오늘의 성경 말씀은 예루살렘으로 향하기 전에 들른 곳에서 바울이 거기에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가진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가는 곳마다 바울은 예루살렘행을 중지하도록 충고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울은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령에게 듣지도 않고 인간적인 감정이나 자신들의 판단으로 말하고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두로에서는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자 말라 하더라”(4절) 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 가이사라에서도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성령의 말씀으로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리라 예언합니다. 이 아가보라는 사람은 사도행전 11장에도 나오는데 대기근을 예언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가이사라에서 바울이 체재하고 있을 때 아가보가 찾아온 곳이 빌립의 집이었습니다. 빌립은 사도행전 6장에 쓰여 있는 선택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장에는 이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구원으로 인도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그 사건이 교회를 이방인 전도로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빌립과 더불어 지금까지 바울과 동행해 온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그만두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즉 바울을 만류한 사람들은 결코 인간적인 생각으로 바울을 만류한 게 아니라 신앙적인 생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만류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에 의하여 같은 것을 들으면서도 바울은 가겠다고 하고, 두로나 가이사라의 사람들 그리고 동행자들은 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둘 중에서 어느 쪽이 성령께 묻고 올바른 판단을 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됩니다만, 그것을 계기로 로마에 가게 됩니다. 비록 죄수였지만,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으로부터 로마병들이 지켜주는 형태로 로마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의 판단이 올발랐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랐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간단히 단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바울의 판단이 올발랐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만, 만약 바울이 사람들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실제로 어떻게 되었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일이 진행되었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성령께 물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를 수 있을까요? 그 판단은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성령께 묻는다고 해도 확실히 가는 길을 제시해 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며, 그 판단에 고민할 때도 있습니다. 고민하면서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13절) 라고 하면서 예루살렘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바울 자신도 예루살렘행을 결정했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아직 고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자신의 판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보에도 해당됩니다. 우리도 많이 고민하면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선택해 갑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사람들을 슬프게 하면서도 나아가야만 할 때가 있겠지요. 그리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과거의 판단이 올발랐는지 생각하면서 괴로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의 판단이 잘 못된 것은 아니었는지, 기도하면서 결정하긴 했지만 자기의 생각이 앞서갔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렇게 괴로워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내린 판단이 정말로 올발랐는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바울도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모한 얘기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내리는 판단이 올발랐는지 오류였는지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얼마나 기도했는지, 하나님께 구했는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많은 인간들이기 때문에 기도하면서도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듣고 올바르게 판단했을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 이끌어 주신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실패해도 되고, 잘못해도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는 우리의 판단이나 행동에 따라 바뀌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을 읽어 보면, 우리가 성령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가 속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른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로봇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시된 하나님의 마음에 자기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스스로 판단할 자유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유”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책임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자기가 내린 판단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대로 우리는 자신이 내린 판단의 결과에 대해서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요한 판단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그 판단을 내리면 될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전혀 모르는 마을을 여행할 때, 미리 그 마을의 가이드북이나 지도를 준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을 즐기기는 커녕 불안한 여행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가이드북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한 가이드북으로서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범이 있다는 것을 바울의 말씀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13절의 후반 부분입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절)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바울의 굳은 결심은 “주 예수를 위한” 것으로 예루살렘행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위할 생각으로 예루살렘행을 말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생각해서 그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주 예수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간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 이상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14절) 라고 하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이 가이드북은 단지 우리에게 목적지까지의 길을 가르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범에 따라 나갈 것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그 방법 뿐만 아니라, 그것을 완수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 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힘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함없이 우리 위에 성령을 통해 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을 통해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하여 예수님의 모범에 따라 응답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틀림없이 우리 앞에도 곤란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내려 주십니다. 그 곤란한 일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