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거부나 히키코모리의 청년들 그리고 그 부모들의 카운슬러를 하고 있는 오기노유코 씨라는 분이 쓰신 “마음의 새싹이 나왔어요” 라는 시화집이 있습니다. 그 안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멈춰 서 있는 것은 거기에 멈춰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있어요.”
등교 거부나 히키코모리의 청년들에게 많은 사람들은 노력해서 용기를 내어 학교에 가라고 격려합니다. 그러나 오기노 씨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멈춰 서 있는 것은 거기에 멈춰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책 안의 말들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눈물을 가득 모아 두면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오늘은 울게 해 주세요.”
“자기가 눈물을 흘릴 장소를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의 눈물 받이가 될 수 있지요.”
“사람마다 상당히 무리해서 그곳에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가 나의 있을 곳이다.”
저는 처음에 이 말들이 오기노유코 씨 자신의 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책의 뒷말을 읽고 알았습니다만, 책에 쓰여진 말들은 등교 거부나 히키코모리로 괴로워하는 젊은이들 자신의 말들이었습니다.
정말로 사람을 위로하거나 격려하거나 하는 것은, 괴로움이나 고민 밖에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바로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읽은 성경 말씀에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11절에는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마리아도 깊은 슬픔 때문에 멈추어 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안식일 후 첫날 아침 일찍 아직 어두울 때에 예수님이 묻힌 무덤에 갔습니다. 조금이라도 예수님 곁에 있고 싶어서 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 보았더니 무덤에서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놀라서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몬 베드로와 다른 한 명의 제자와 함께 무덤에 왔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시몬 베드로와 다른 한 명의 제자는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져 버린 것을 확인하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보다 자기들의 신변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주 예수님을 버리고 혼자 내버려 두었을 뿐만 아니라 부활의 주인 예수님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깊은 슬픔 속에 빠져 그곳에 꼼짝 않고 서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도록 슬픈데 게다가 예수님의 시신조차 어딘가로 옮겨져 없어져 버렸기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마리아는 그저 멈춰 서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멈춰 서 있는 것은 거기에 멈추어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눈물을 잔뜩 머금으면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오늘은 울게 해 주세요.” 그런 마리아의 모습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셨습니다. 우선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얼지 못함이니이다” 이렇게 대답하면서 누군가가 있는 인기척을 느꼈지요. 마리아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그 분이 예수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그런데도 마리아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거셨습니다. “마리아” 라고.
이 귀에 익고 그리운 말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말을 거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 확신했습니다. 그녀는 뒤돌아 보고 “랍오니”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에 극적인 만남이 일어났습니다. 동산지기인 줄 알았던 이 사람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차리고 “랍오니,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나서 기쁜 나머지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매달리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차가운 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마음을 거절한 게 아닙니다. 마리아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마리아는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존재로서 예수님께서 눈앞에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자신의 손으로 꽉 붙잡아 자기 것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매달려서 붙잡아 마리아의 것으로 할 수 없는 존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은 내가 이 손으로 붙잡고 나의 곁에 놓아두면 된다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이런 내가 예수님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있으면서도 반대 방향을 향해 버리는 마리아를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야” 라고 부르시고 다시 한 번 뒤돌아 보게 하셔서 진실한 하나님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앞으로도 반드시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게 아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신다.
이때야 비로소 마리아는 해방되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예수님께 매달리고 싶다는 마음으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라”라고 마리아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새롭게 살아 갈 목적을 주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난 그녀는 이제 새로운 생명으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성경 학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서에는 주 예수와 많은 사람의 만남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가장 다정함이 가득 차 있는 이야기가 이것입니다. 이렇게 다정함이 가득 찬 만남의 사건은 다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리아만의 일이 아닙니다. 단 한 번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의 주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뒤돌아보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나는 너희의 주 하나님이다. 너희는 나의 것이다. 나는 너희를 이 손으로 꽉 붙잡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너희를 버리는 것은 절대로 없다.
2022年4月17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ヨハネ(시편) 11章 25~26節
〇讃 頌 讃頌歌 159(1, 4節)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聖書奉読 ヨハネによる福音書(요한복음) 20章 11~18節
〇説 教 「新しい命に生かされて(새 생명을 살게 되며)」
〇祈 祷
〇聖 礼 典 聖餐式
〇讃 頌 讃頌歌 161(1, 4節)
〇献 金
〇報 告
〇感謝祈祷
〇頌 栄 讃頌歌 3
〇祝 祷
【 2022年 4月 17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新しい命に生かされて」 ヨハネ 20章11節~18節
皆さん、イースター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復活節の祝福が皆様のうちに満ちあふれますようお祈りいたします。
不登校やひきこもりの青年たち、そしてその親たちのカウンセラーをしている荻野ゆう子さんという方が書いた「心の新芽が出たよ」という詩画集があります。その中に、このような言葉が書かれています。
「立ち止まっているのは、そこに立ち止まらないといけないわけがあるんだよ。」
不登校やひきこもりの青年たちに対して、多くの人は、頑張って、勇気を出して、学校に行きなさい、と励まします。でも、荻野さんは、そうではないというのです。「立ち止まっているのは、そこに立ち止まらないといけない訳がある」のだ、と彼女は言っています。
本の中の言葉をいくつか紹介します。
「涙をいっぱいためると、気持ちが動かなくなっちゃうから、今日は泣かせてほしい。」
「自分が涙を流す場所を持っていれば、誰かの涙の受け皿になれるよね。」
「人それぞれ、けっこう無理してそこにいることもある。でも、そんな自分に気づいてくれる人がいれば、そこが私の居場所。」
私は最初、これらは、荻野ゆう子さん自身の言葉であると思いました。ところがそう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本の後書きを読んで分かりましたが、本に書かれた言葉は、不登校やひきこもりに苦しんでいる、若者たち自身の言葉だったのです。
本当に人を慰めたり、励ましたりするのは、苦しみや悩みの外にいる人の言葉ではなく、その只中にいる人の言葉なのだ、と改めて思わされました。
さて、先程読みました聖書箇所に、マグダラのマリアという人が登場します。11節には、「マリアは墓の外に立って泣いていた」と書かれています。この時、マリアもまた、深い悲しみのために、立ち止まらざるを得なかったのです。
彼女は週の初めの日の朝早く、まだ暗いうちにイエスさまが葬られた墓に行きました。少しでもイエスさまの側にいたかったのでしょう。ところが墓に行ってみると、墓から石が取りのけてあります。彼女は驚いて、弟子たちのところへ飛んで帰ります。そして再び、シモン・ペトロともう一人の弟子と共に、墓にやって来ます。
ここで興味深いのは、シモン・ペトロともう一人の弟子は、墓が空であることを見ていながら、さっさと家に帰ってしまったということです。弟子たちは、イエスさまのご遺体がなくなってしまったことを確認し、驚きました。彼らはイエスさまが甦られたということよりも、自分たちの身の安全をまず考えたのです。それで、急いで家に帰ってしまいました。彼らは、十字架の主イエスさまを見捨てて、独りにしてしまっただけではなく、復活の主イエスさまをも、見捨てて家に帰って行ってしまったのです。
しかしマリアは、深い悲しみをもって、そこに立ち尽くしていました。愛するイエスさまが、十字架で死なれただけでも、胸が張り裂けるように悲しいのに、その上、イエスさまのご遺体さえもどこかに運び去られてしまった。言い尽くせない悲しみに、マリアは、ただ立ち止まって、涙する他なかったのです。
「立ち止まっているのは、そこに立ち止まらないといけないわけがあるんだよ。」「涙をいっぱいためると、気持ちが動かなくなっちゃうから、今日は泣かせてほしい。」そんなマリアの姿がそこにあります。
そのマリアに、神さまが働きかけてくださいました。まず天使がマリアに声をかけます。『婦人よ、なぜ泣いているのか』。マリアが答えます。『わたしの主が取り去られました。どこに置かれているのか、わたしには分かりません』。こう答えながら、誰かがいる気配を感じたのでしょう。マリアは、後ろを振り返ります。するとそこに、復活されたイエスさまがおられたのです。
しかし、彼女はまだ、その方がイエスさまだと気づきません。そこでイエスさまは言われました。「婦人よ、なぜ泣いているのか。だれを捜しているのか。」それでも、マリアはまだ気がつきません。
自分に気づかないマリアにイエスさまはもう一度、彼女の名前をもって呼び掛けられたのです。「マリア」、と。
この聞き慣れた、懐かしい言葉を聞いたとき、マリアは、声をかけられた方が、イエスさまであることを確信しました。彼女は振り向いて、言葉に表せない激しい感動と、溢れ出る喜びを込めながら、「ラボニ」と答えました。
ここに劇的な出会いが起こります。園丁だと思っていたこの人が、イエスさまであると気づいて、「ラボニ、先生」と呼びかけたのです。
マリアは復活の主イエスさまと出会って、喜びのあまりイエスさまにすがりつきました。そのマリアに対しイエスさまは、「わたしにすがりつくのはよし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冷たい言葉のようにも思います。しかし、イエスさまはマリアの思いを拒んだわけではないのです。マリアがこれから歩みべき道を示されたのです。
復活の主と出会ったマリアは、イエスさまを掴まえようとしました。目に見えることができて、摑まえることができる存在として、イエスさまが目の前におられる。そのイエスさまを、自分の手でしっかりと握り締めて、自分のものにしようと思ったのです。しかし、イエスさまは、すがりついて、摑まえて、マリアのものとすることができない存在、神さまであられるのです。
あのイエスさまというお方は、私がこの手で捕まえて、私の側に置いておけば良い、というようなお方ではありません。そうではなくて、この私が、イエスさまによって捕らえられているのです。
イエスさまを見ていながら、反対の方向を向いてしまうようなマリアを、イエスさまは「マリアよ」と呼んで、もう一度振り向かせ、まことの神としてのお姿を見せてくださいました。そして、ご自身が、神として、これからも必ず共にいてくださることを約束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私が摑んでいるのではない。イエスさまが、私を摑んでいてくださる。
この時初めて、マリアは解き放たれました。目に見ることができて、手で摑むことのできるイエスさまに、しがみついていたいという思いから、解き放たれたのです。
イエスさまは「わたしの弟子たちのところへ行って、こう言いなさい」とマリアに新たな使命を与えられました。新たに生きる目的を与えて下さったのです。復活の主イエスさまに出会った彼女は、今や新しい命に生き始めたのです。
ある有名な聖書学者が、こう言っています。
「新約聖書には、主イエスと、多くの人々との出会いの物語が、記されている。しかしその中で、最もやさしさに満ちている物語が、これである。こんなに優しさに満ちた出会いの出来事は、他のどこにも記されていない。しかし、それは、マリアだけのものではない。ただ一度だけ起こったものではない。今、ここでも、私たちの間で起こっている。だから、今、私たちは、主の復活を祝うのだ。」
皆さん、復活の主イエスさまは、今も、私たち一人一人の名前を読んでくださっています。そして、私たちが、振り向き、体だけではなく、心の向きを変えることを、願っておられます。
私は、あなたの主なる神だ。あなたは、私のものだ。私は、あなたを、この手で握り締めている。どんな時にも、あなたを見放すことは絶対にない。
復活の主は、今も、私たち一人一人にそう言ってくださっています。
【2022년 4월 17일 주일예배(요약판)】
“새 생명을 살게 되며” 요한복음 20장 11~18절
여러분, 부활절 축하드립니다. 부활절의 축복이 여러분 가운데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등교 거부나 히키코모리의 청년들 그리고 그 부모들의 카운슬러를 하고 있는 오기노유코 씨라는 분이 쓰신 “마음의 새싹이 나왔어요” 라는 시화집이 있습니다. 그 안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멈춰 서 있는 것은 거기에 멈춰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있어요.”
등교 거부나 히키코모리의 청년들에게 많은 사람들은 노력해서 용기를 내어 학교에 가라고 격려합니다. 그러나 오기노 씨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멈춰 서 있는 것은 거기에 멈춰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책 안의 말들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눈물을 가득 모아 두면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오늘은 울게 해 주세요.”
“자기가 눈물을 흘릴 장소를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의 눈물 받이가 될 수 있지요.”
“사람마다 상당히 무리해서 그곳에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있으면 거기가 나의 있을 곳이다.”
저는 처음에 이 말들이 오기노유코 씨 자신의 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책의 뒷말을 읽고 알았습니다만, 책에 쓰여진 말들은 등교 거부나 히키코모리로 괴로워하는 젊은이들 자신의 말들이었습니다.
정말로 사람을 위로하거나 격려하거나 하는 것은, 괴로움이나 고민 밖에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바로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읽은 성경 말씀에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11절에는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마리아도 깊은 슬픔 때문에 멈추어 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안식일 후 첫날 아침 일찍 아직 어두울 때에 예수님이 묻힌 무덤에 갔습니다. 조금이라도 예수님 곁에 있고 싶어서 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 보았더니 무덤에서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놀라서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몬 베드로와 다른 한 명의 제자와 함께 무덤에 왔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시몬 베드로와 다른 한 명의 제자는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져 버린 것을 확인하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보다 자기들의 신변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주 예수님을 버리고 혼자 내버려 두었을 뿐만 아니라 부활의 주인 예수님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깊은 슬픔 속에 빠져 그곳에 꼼짝 않고 서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도록 슬픈데 게다가 예수님의 시신조차 어딘가로 옮겨져 없어져 버렸기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마리아는 그저 멈춰 서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멈춰 서 있는 것은 거기에 멈추어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눈물을 잔뜩 머금으면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에 오늘은 울게 해 주세요.” 그런 마리아의 모습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셨습니다. 우선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얼지 못함이니이다” 이렇게 대답하면서 누군가가 있는 인기척을 느꼈지요. 마리아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그 분이 예수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그런데도 마리아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거셨습니다. “마리아” 라고.
이 귀에 익고 그리운 말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말을 거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 확신했습니다. 그녀는 뒤돌아 보고 “랍오니”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에 극적인 만남이 일어났습니다. 동산지기인 줄 알았던 이 사람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차리고 “랍오니,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나서 기쁜 나머지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매달리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차가운 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마음을 거절한 게 아닙니다. 마리아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마리아는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존재로서 예수님께서 눈앞에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자신의 손으로 꽉 붙잡아 자기 것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매달려서 붙잡아 마리아의 것으로 할 수 없는 존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은 내가 이 손으로 붙잡고 나의 곁에 놓아두면 된다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이런 내가 예수님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있으면서도 반대 방향을 향해 버리는 마리아를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야” 라고 부르시고 다시 한 번 뒤돌아 보게 하셔서 진실한 하나님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앞으로도 반드시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게 아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신다.
이때야 비로소 마리아는 해방되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예수님께 매달리고 싶다는 마음으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라”라고 마리아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새롭게 살아 갈 목적을 주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난 그녀는 이제 새로운 생명으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성경 학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서에는 주 예수와 많은 사람의 만남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가장 다정함이 가득 차 있는 이야기가 이것입니다. 이렇게 다정함이 가득 찬 만남의 사건은 다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리아만의 일이 아닙니다. 단 한 번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의 주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뒤돌아보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나는 너희의 주 하나님이다. 너희는 나의 것이다. 나는 너희를 이 손으로 꽉 붙잡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너희를 버리는 것은 절대로 없다.
부활의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