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감사절 주일예배로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감라함을 넘치게 하라”(7절) 라고 오늘의 성경 말씀에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가 넘치고 있을까요?
사람은 자신에게 좋은 상황에 있을 때에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드릴 수 있는 감사는 가치가 없습니다. 반대로 어려로울 때나 괴로울 때는 누구나가 감사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 때에 드리는 감사에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여러가지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만, 그 감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걸러지고 알짜 감사만 남게 됩니다. 가치 있는 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그 감사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인 것입니다.
오늘의 예배 부음의 말씀으로서 데사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읽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전 5:1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항상 기뻐한다”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것,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 이 세 가지입니다.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거기에 감사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이며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기에는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는 상호 관계가 있고 그 중심에 감사한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능동적인 행위가 중심에 있고 서로 관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값싼 감사에 안주하지 말고 값진 감사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올해의 감사절은 특별한 감사절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에 감사의 드린다. 이것이야말로 교회에 있어서 또 믿는 사람에 있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감사에 대해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이 좋으면 감사할 수 있다. 이 세상적으로 형편이 좋으면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반대로 말하자면, 이 세상의 형편이 좋지 않으면 감사하지 않는다, 감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적인 형편에 의한 감사뿐이면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 실현될 수 없습니다. 거짓말이 됩니다. 이 세상에는 감사가 안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감사에는 “이 세상적인 감사”보다 더 귀한 다른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감사”입니다. 신앙에 의한 감사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적인 감사란 상황으로부터 주어지는 감사이며 감정으로부터 오는 감사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이 세상적인 상황이 감사의 주체이고 나는 그저 상황에 끌려갈 뿐입니다. 그 상황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에 의한 감사는 다릅니다. 상황 떄문에 아니라 주님이신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감사의 원동력이며 감정이 주는 감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 안에서 분명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바울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이신 하나님을 넘칠도록 감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으로 받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습니까? 주 안에서 살아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 대답은 감사가 넘치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삶은 믿음의 사람에게는 필수 항목입니다. 항상 믿음으로 주어지는 감사가 넘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감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하는 것입니다. 힘있는 감사는 상황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네 가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예수”, “말씀”, “믿음”, “감사”, 이 네 가지의 단어가 우리 믿음의 중요한 골격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영접하고, “말씀”으로 잘 가르침을 받아 “믿음”이 강해져서 “감사”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이 건강한 크리스천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늘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말씀을 듣고 3일간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식료가 바닥났습니다. 남자만 세어도 4000명이나 있는데 음식이 떡 7개와 작은 생선 2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거기에 있었던 사람은 여자나 아이들도 세면 1만 명 이상 있었다 생각됩니다. 알아차렸으면 많은 사람들이 굶고 있는 것입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7개의 떡과 생선 2마리를 가져오게 하셔서 축사하셨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떡과 생선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 배 불리 목고 떡이 7광주리나 남았다고 합니다.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모릅니다. 단지 이 기적이 예수님의 감사의 기도로부터 시작된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에 안 어울리는 상황,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감사의 기도는 빛이 더 나는 법입니다.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감사하라. 감사가 못할 때일수록 깨어 감하사라. 이것이 예수님의 감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상황적으로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초라한 떡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는 “지금” 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상황 중에서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감사는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힘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늘 하나님께서 감사거리를 선물로 주십니다.
감사가 넘치는 곳에는 그것에 알맞은 상황이 찾아옵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 괴로운 상황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바울이 이 골로새서의 편지를 쓴 것은 로마에서 사로잡힌 몸이었을 때였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감사는 어떤 병이라도 감옥에 갇혀 있더라도 어떤 상황에 쫓겨나더라도 빼앗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2022年11月20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Ⅰテサロニケ(데살로니가전서) 5章 16~18節
〇讃 頌 讃頌歌 21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05 (感謝節 ①)
〇讃 頌 讃頌歌 593 (1, 3, 5, 6節)
〇聖書奉読 コロサイの信徒への手紙(골로새서) 2章 6~7節
〇説 教 「感謝する信仰者に(감사하는 믿는 자로)」
〇祈 祷
〇聖 礼 典 聖餐式
〇讃 頌 讃頌歌 428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6
〇祝 祷
【 2022年 11月 20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感謝する信仰者に」 コロサイ書 2章 6~7節
今日は、感謝節主日礼拝として礼拝を献げています。「あふれるばかりに感謝しなさい」と今日の御言葉にあります。皆さん、感謝にあふれているでしょか?
人は自分にとって良い状況の時には、誰でも自然と感謝します。しかし、誰でも献げられる感謝というのは、価値がありません。逆に、苦しい時、辛い時というのは、誰もが感謝を献げられ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その時に献げられる感謝には力があります。私たちの中には、色々な感謝があるかと思いますが、その感謝が、苦しい状況の中でろ過され、選り抜きの感謝だけ残るようになります。価値ある感謝と言えます。また、その感謝は、晴らしい力を持っており、神さまが喜ばれる感謝なのです。
今日の礼拝の招きの言葉としてテサロニケ一5章16~18節をお読みしました。「いつも喜んでいなさい。絶えず祈りなさい。どんなことにも感謝しなさい。これこそ、キリスト・イエスにおいて、神があなたがたに望んでおられることです。」(Ⅰテサロニケ5:18)
神さまが私たちに求められているが言われています。「いつも喜ぶ」こと、「絶えず祈る」こと、「どんなことにも感謝する」こと、この三つです。
いつも喜ぶというのは、そこに感謝することがあるから喜べるのであり、どんなことにも感謝するというのは、どのような状況の中でも感謝するには、必ず祈りが必要となります。この三つは相互関係があり、その中心に感謝する、どんなことにも感謝するという能動的な行為が中心となって互いに関係し合っているわけです。
だからこそ、信仰者は、価値のない感謝に満足せずに、価値のある感謝にチャレンジするべきです。そう考えますと、今年の感謝節は特別な感謝節なのかもしれません。皆が苦しんでいる時に、感謝の礼拝を献げる。これこそ教会にとって、また、信仰者にとって必要なのです。
ところで、多くの人が感謝について勘違いしています。自分に与えられた状況が良ければ感謝出来る。この世的に都合が良ければ感謝出来ると考えています。ですから、逆に言えば、この世の都合が悪ければ感謝しない、感謝出来ないということです。もし、この世的な都合による感謝だけであるとするならば、「どんなことにも感謝しなさい」とおっしゃった神さま様の御言葉は実現出来なくなります。嘘になります。この世には、感謝出来ない時が多いからです。
感謝には「この世的な感謝」よりもっと尊い感謝があります。それは「霊的な感謝」です。信仰による感謝と言い換えられます。この世的な感謝というのは、状況から与えられる感謝であり、感情から来る感謝です。これは自然な感情であり、誰でも出来る感謝です。この世的な感謝の主体は私であり、ただ状況に引っ張られるだけです。その状況によって、泣いたり笑ったりします。しかし、信仰による感謝は、違います。状況によってではなく、主なる神さまの為に感謝することです。信仰が感謝の原動力であって、感情に与えられる感謝とは、次元が違います。
今日の御言葉の中で、はっきりと示されています。コロサイの信徒へ手紙2章6節です。「あなたがたは、主キリスト・イエスを受け入れたのですから、キリストに結ばれて歩みなさい。キリストに根を下ろして造り上げられ、教えられたとおりの信仰をしっかり守って、あふれるばかりに感謝しなさい。」(コロサイ2:6-7)
信仰に基づいて神さまに感謝することをパウロは私たちに求めています。主なる神さまをあふれるほどに感謝するのです。なぜなら、私たちは主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て、主に結ばれて生きているからです。
あなたは主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ていますか? あなたは主イエス・キリストと結ばれていますか? 主に結ばれて生きているのなら、どうやって生きるべきですか? その答えは、感謝があふれるほどに生きるべきだということです。
感謝の人生は、信仰者には必須項目であるのです。常に、信仰によって与えられる感謝があふれていることが、真の信仰者の姿です。真の感謝は、感情から来るのではなく、信仰から出るものなのです。力を持っている感謝は、状況から与えられるものではなく、神さまから与えられるものです。
クリスチャンは、四つ単語からなっていると言います。「イエス」、「御言葉」、「信仰」、「感謝」。この四つの単語が信仰において、重要な骨格です。「イエスさま」を自分の主として迎えて、「御言葉」で養われて、「信仰」が強まって、「感謝」の豊かな実を結ぶ人生が健全なクリスチャンの人生と言えます。
イエスさまがいらっしゃる所にはいつも大勢の人が集まっておりました。イエスさまが語る御言葉に聞き入って、三日間もイエスさまと共にいました。その時に問題が起こりました。食料が底をついたのです。男性だけでも四千人はいるのに、食べ物はパン七つと小魚二匹だけです。おそらくそこにいた人は女性や子どもも入れると1万人以上はいたと思えます。気づいたら多くの人が飢えているわけですね。とても感謝出来る状況ではありません。なのに、イエスさまがなさったことは、その七つのパンと魚二匹を持って来させ、感謝の祈りを献げることだったのです。それから、イエスさまはそのパンと魚を人々に分け与えました。すると、そこにいた大勢の人々は腹を満たし、パンが七かごも余ったといいます。何が起こったのかはわかりません。ただ、この奇跡がイエスさまの感謝の祈りから始まったことを私たちは覚えたいのです。
感謝にふさわしくない状況、苦しければ苦しい時にこそ、感謝の祈りは輝きます。苦しければ苦しいほど、感謝しなさい。感謝が出来ない時ほど、目を覚まして感謝しなさい。これがイエスさまの感謝でした。イエスさまは、状況的には真に苦しいものでしたが、自分が持っていた粗末なパンを持って、神さまに感謝したのです。
感謝は「今」することです。今、自分の状況の中で感謝することが、真の感謝なのです。感謝は、その状況を変えられる最後の力なのです。感謝する人には、神さまが感謝の種をくださるのです。
感謝があふれる所には、それにふさわしい状況が訪れます。真の感謝は、その苦しい状況を変える力があるのです。パウロがこのコロサイの信徒への手紙を書いたのは、ローマで捕らわれの身のある時でした。牢につながれていたのです。それでもパウロは「あふれるばかりに感謝しなさい」と言います。信仰に基づく感謝は、どんな病気でも、牢につながれても、いかなる状況に追いやられても、奪われることはないのです。
皆さんの人生に、信仰によって与えられる感謝満ちあふれますようお祈りいたします。
【2022년 11월 20일 주일예배(요약판)】
“감사하는 믿는 자로” 골로새서 2장 6~7절
오늘은 감사절 주일예배로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감라함을 넘치게 하라”(7절) 라고 오늘의 성경 말씀에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가 넘치고 있을까요?
사람은 자신에게 좋은 상황에 있을 때에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드릴 수 있는 감사는 가치가 없습니다. 반대로 어려로울 때나 괴로울 때는 누구나가 감사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 때에 드리는 감사에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여러가지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만, 그 감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걸러지고 알짜 감사만 남게 됩니다. 가치 있는 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그 감사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인 것입니다.
오늘의 예배 부음의 말씀으로서 데사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읽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전 5:1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항상 기뻐한다”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것,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 이 세 가지입니다.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거기에 감사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이며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기에는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는 상호 관계가 있고 그 중심에 감사한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능동적인 행위가 중심에 있고 서로 관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값싼 감사에 안주하지 말고 값진 감사에 도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올해의 감사절은 특별한 감사절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에 감사의 드린다. 이것이야말로 교회에 있어서 또 믿는 사람에 있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감사에 대해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이 좋으면 감사할 수 있다. 이 세상적으로 형편이 좋으면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반대로 말하자면, 이 세상의 형편이 좋지 않으면 감사하지 않는다, 감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적인 형편에 의한 감사뿐이면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 실현될 수 없습니다. 거짓말이 됩니다. 이 세상에는 감사가 안 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감사에는 “이 세상적인 감사”보다 더 귀한 다른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감사”입니다. 신앙에 의한 감사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적인 감사란 상황으로부터 주어지는 감사이며 감정으로부터 오는 감사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이 세상적인 상황이 감사의 주체이고 나는 그저 상황에 끌려갈 뿐입니다. 그 상황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에 의한 감사는 다릅니다. 상황 떄문에 아니라 주님이신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감사의 원동력이며 감정이 주는 감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 안에서 분명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6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바울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이신 하나님을 넘칠도록 감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으로 받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습니까? 주 안에서 살아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 대답은 감사가 넘치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삶은 믿음의 사람에게는 필수 항목입니다. 항상 믿음으로 주어지는 감사가 넘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감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하는 것입니다. 힘있는 감사는 상황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네 가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예수”, “말씀”, “믿음”, “감사”, 이 네 가지의 단어가 우리 믿음의 중요한 골격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영접하고, “말씀”으로 잘 가르침을 받아 “믿음”이 강해져서 “감사”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이 건강한 크리스천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는 늘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말씀을 듣고 3일간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식료가 바닥났습니다. 남자만 세어도 4000명이나 있는데 음식이 떡 7개와 작은 생선 2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거기에 있었던 사람은 여자나 아이들도 세면 1만 명 이상 있었다 생각됩니다. 알아차렸으면 많은 사람들이 굶고 있는 것입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7개의 떡과 생선 2마리를 가져오게 하셔서 축사하셨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떡과 생선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 배 불리 목고 떡이 7광주리나 남았다고 합니다.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모릅니다. 단지 이 기적이 예수님의 감사의 기도로부터 시작된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에 안 어울리는 상황,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감사의 기도는 빛이 더 나는 법입니다.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감사하라. 감사가 못할 때일수록 깨어 감하사라. 이것이 예수님의 감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상황적으로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초라한 떡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는 “지금” 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상황 중에서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감사는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힘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늘 하나님께서 감사거리를 선물로 주십니다.
감사가 넘치는 곳에는 그것에 알맞은 상황이 찾아옵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 괴로운 상황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바울이 이 골로새서의 편지를 쓴 것은 로마에서 사로잡힌 몸이었을 때였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감사는 어떤 병이라도 감옥에 갇혀 있더라도 어떤 상황에 쫓겨나더라도 빼앗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믿음으로 말마암아 주어지는 감사가 넘치도록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