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말씀인 로마서 16장 1~16절에는 마치 영화 말미 자막으로 나오는 엔드롤처럼 잇달아 계속 이름이 나옵니다.
우선 맨 처음에 “우리 자매 뵈뵈”(1절) 라는 여성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여성은 로마 교회의 신도가 아니라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로 바울의 편지를 로마 교회에 보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항구도시인 겐그레아에는 주변에 슬럼가와 같은 장소가 있는데 이 여집사 뵈뵈는 그 빈민가의 사람들을 위해 자선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돠와주며 아낌없는 원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도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 진정한 신앙자인 그녀였기 때문에 바울은 간곡히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추천하고, 로마교회를 방문하는 뵈뵈를 교회가 정중하게 영접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 이후에는 로마에 있는 바울의 복음 선교에 깊이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사람들의 구체적인 정보가 주어지고 있는 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3절・사 18장 참조)뿐인데, 이들이 바울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함께 한 것에 대하여 바울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 교회까지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이외의 사람은 여기에만 등장하는 무명의 신앙인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울을 도와 복음 선교의 한 몫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알기 위해서는 이름이나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내용으로부터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여기에는 유대인도 있고 그리스인, 로마인, 아시아인도 있습니다. 또 남성도 여성도 있습니다. 당시 권력자와 가까운 관계의 사람도 있고 명가를 섬기는 하인이나 노예들도 있습니다.
13절에 “택하심을 입은 루포”라고 되어 있는데, 예로부터 이 루포가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진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막15:21 참조)
우연히 지나가다 보니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된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이윽고 신앙이 주어졌고, 그것이 그 아들들에게 계승되었다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여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별 차이나 민족의 차이, 또 신분적인 차이도 당시의 사회 개념을 넘어 신앙을 통해 주님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 그 자체였습니다.
여기에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보면 외면 받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성경의 무대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도움이 되기 위해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구하여 기도하고 복음 선교를 섬긴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면서 문안 인사를 할 때 “주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을 거듭 덧붙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ἐν Κυρίῳ (엔 큐리오) 또는 ἐν Χριστῷ (엔 크리스토)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열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in Christ"가 되고 "그리스도에 있어서" 라고 번역하면 될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 ”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거기서는 모든 입장의 차이 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입니다.
바울은 이 ἐν Κυρίῳ(엔 큐리오)에 의해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갈라디아서에서 실로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6-28)
여러분,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ἐν Κυρίῳ(엔 큐리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상, 하늘과 땅을 관철하여 이 나의 짧은 생애도 넘어서,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6절에서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16절) 라고 말합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라는 것은 더 없는 형제애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습관이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하지 않겠지만, 다만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진심으로 인사를 주고받으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과장되게 입맞춤을 한다 해도 거기에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입맞춤에 의한 인사를 장려한 후에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울이 품는 그리스도 교회의 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한다”, 이 최고의 애정 표현이 전 세계의 교회에서 실현된다는 이 위대한 환상입니다.
게다가 여기에는 모든 입장의 사람들이 등장해 왔습니다. 남자와 여자, 왕가의 신하와 노예들, 이교도와 신도, 빈민가의 자선가와 전과자, 유대인도 이방인도 이 입장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 최고의 애정 표현으로 신도의 교제가 실현되고 그것이 전 세계로 확대될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여러분도, 이 바울의 희망에, 또 교회의 비전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안에서 교회를 섬기며, 복음 선교의 한 역할을 담당해 나가도록 합시다.
2023年1月8日 新年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ガラテヤ(갈라디아서) 3章 26~28節
〇讃 頌 讃頌歌 8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 (詩編1編)
〇讃 頌 讃頌歌 524
〇聖書奉読 ローマの信徒へ手紙(로마서) 16章 1~16節
〇説 教 「主イエスの共同体(주 예수의 공동체)」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20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1月 8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主イエスの共同体」 ローマ書 16章 1~16節
今日の御言葉である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16章1~16節には、まるで映画の最後に、字幕で流れるエンドロールのように、次から次へと名前が出て来ます。
まず最初に、「わたしたちの姉妹フェベ」(1節)という女性が紹介されています。この女性はローマ教会の信徒ではなく、ケンクレアイ教会の女性執事で、パウロの手紙をローマ教会へ届ける役割を担っていました。
ケンクレアイは港町ですが、その港町の周辺には、スラム街のような場所があり、この女性執事フェベは、そのスラム街の人たちに対する慈善活動をしていました。彼女は多くの人を助け、惜しみない援助をしていたのです。パウロも彼女に助けられました。そのような真の信仰者である彼女だったからこそ、パウロは自信をもってローマ教会の人々に紹介し、何か必要があれば助けて欲しいと願っているのです。
それから3節以降、ローマにいるパウロの福音宣教に深く関わった人たちの名前が列挙されています。ただ、その人たちの具体的な情報が与えられているのは、「プリスキラとアキラ」(3節・使18章参照)だけです。それ以外の人は、ここにしか登場しない無名の信仰者たちです。そういった人々がパウロを助け、福音宣教の一役を担っていたのです。
彼らを知るには、名前やパウロが紹介している内容から想像するしかないのですが、ここにはユダヤ人もいれば、ギリシア人、ローマ人、アジア人もいます。また、男性もいれば女性もいる。当時の権力者に近い関係の人もいれば、名家に仕える召使いや奴隷たちもいます。
13節に「選ばれた者ルフォス」とありますが、昔からこのルフォスが、マルコによる福音書に記されている主イエスの十字架を背負ったキレネ人シモンの息子であると言われています。(マルコ15:21参照)
たまたま通りかかったがために、主イエスの十字架を無理やり負わされたキレネ人シモンが、やがて信仰が与えられ、それが息子たちに継承された、という驚くべき神さまの救いのご計画がここにあったことが分かります。
教会には様々な人々がおりました。性別の違いや民族の違い、また身分的な違いも、当時の社会概念を超えて、信仰を通して、主において一つの教会を形成していたことが分かります。まさに、これがキリスト教そのものであったのです。
ここに名前が挙げられている人々は、社会的に見れば見向きもされない人々です。決して、聖書の表舞台に出ない人々です。ただキリストのお役に立つために、この世ではなく神の国の基準で、自分に出来ることから祈り求め、福音宣教に仕えていた人々なのです。このような人々によって福音が伝えられていったのです。
パウロはそのような彼らの名前を挙げるときに、「キリストに仕えて」とか「キリストを信じる」とか「主に結ばれて」とか「主のために」とか、そのように表現しています。これらの言葉は、ギリシア語では、ἐν Κυρίῳ(エン・キュリオー)、或いはἐν Χριστῷ(エン・クリストー)という言葉です。これらの言葉が10回も使われています。英語では「in Christ」となり「キリストにおいて」と訳したら良いでしょうか? 厳密には「キリストの中にある」となるかと思います。
私たち信仰者はキリストの中にあるわけですから、そこではあらゆる立場の違いなどは全く問題ではなくなるのです。これがキリストの共同体である教会なのです。
パウロは、このἐν Κυρίῳ(エン・キュリオー)によって実現するキリストの共同体をガラテヤの信徒へ手紙の中で、実に見事に表現しています。「あなたがたは皆、信仰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結ばれて神の子なのです。洗礼を受けてキリストに結ばれたあなたがたは皆、キリストを着ているからです。そこではもはや、ユダヤ人もギリシア人もなく、奴隷も自由な身分の者もなく、男も女もありません。あなたがたは皆、キリスト・イエスにおいて一つだからです。」(ガラテヤ3:26~28)
皆さん、私たちの信仰において、もっとも大切なことは、このἐν Κυρίῳ(エン・キュリオー)、キリストの中にある、と言うことです。私たちが、キリストの中にある以上、天と地を貫いて、この私の短い生涯も超えて、キリストの共同体の一員であるのです。
だから、パウロは16節で「あなたがたも、聖なる口づけによって互いに挨拶を交わしなさい。キリストのすべての教会があなたがたによろしくと言っています。」(16節)と言っているのです。
「聖なる口づけによって互いに挨拶を交わす」と言うのは、これ以上ない兄弟愛の表現かと思います。でも、私たちにはこのような習慣が根付いていませんので、ほとんどしないと思いますが、ただ、パウロがここで言っているのは、心から挨拶を交わすと言うことだと思います。いくら大げさに口づけをしても、そこに心がなかったら、それは無意味です。ユダは、口づけによって、イエスさまを裏切りました。ですから、聖なる口づけによって互いに挨拶を交わしなさい、とパウロが言う時、それは、ありたっけの心で、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ということなのです。
そして、注目したいのは、この口づけによる挨拶の奨励の後に、「キリストのすべての教会があなたがたによろしくと言っています」、とパウロが語っていることです。
ここに、パウロが抱く、キリストの教会のビジョンがあるだと思います。「聖なる口づけによって互いに挨拶を交わす」、この最高の愛情表現が、全世界の教会で実現する、というこの偉大な幻です。
しかも、ここには、あらゆる立場の人たちが登場してきました。男と女、王家の家来と奴隷たち、異教徒と信徒、スラム街の慈善家と前科者、ユダヤ人も異邦人も、この立場の違うものたちの中で、最高の愛情表現で信徒の交わりが実現し、そして、それが全世界へと拡大していくという、この希望です。
皆さんも、このパウロの希望に、また、教会のビジョンに一役買っているのです。私たちもキリストの中にあります。だからこそ、キリストにおいて、キリストの教会に仕え、福音宣教の一役を担って行きたいと願います。
【2023년 1월 8일 주일예배(요약판)】
“주 예수의 공동체” 로마서 16장 1~16절
오늘의 성경 말씀인 로마서 16장 1~16절에는 마치 영화 말미 자막으로 나오는 엔드롤처럼 잇달아 계속 이름이 나옵니다.
우선 맨 처음에 “우리 자매 뵈뵈”(1절) 라는 여성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여성은 로마 교회의 신도가 아니라 겐그레아 교회의 여집사로 바울의 편지를 로마 교회에 보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항구도시인 겐그레아에는 주변에 슬럼가와 같은 장소가 있는데 이 여집사 뵈뵈는 그 빈민가의 사람들을 위해 자선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돠와주며 아낌없는 원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도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 진정한 신앙자인 그녀였기 때문에 바울은 간곡히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추천하고, 로마교회를 방문하는 뵈뵈를 교회가 정중하게 영접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 이후에는 로마에 있는 바울의 복음 선교에 깊이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사람들의 구체적인 정보가 주어지고 있는 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3절・사 18장 참조)뿐인데, 이들이 바울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함께 한 것에 대하여 바울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 교회까지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이외의 사람은 여기에만 등장하는 무명의 신앙인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울을 도와 복음 선교의 한 몫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알기 위해서는 이름이나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내용으로부터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여기에는 유대인도 있고 그리스인, 로마인, 아시아인도 있습니다. 또 남성도 여성도 있습니다. 당시 권력자와 가까운 관계의 사람도 있고 명가를 섬기는 하인이나 노예들도 있습니다.
13절에 “택하심을 입은 루포”라고 되어 있는데, 예로부터 이 루포가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진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막15:21 참조)
우연히 지나가다 보니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된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이윽고 신앙이 주어졌고, 그것이 그 아들들에게 계승되었다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여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별 차이나 민족의 차이, 또 신분적인 차이도 당시의 사회 개념을 넘어 신앙을 통해 주님 안에서 하나의 교회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 그 자체였습니다.
여기에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보면 외면 받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성경의 무대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께 도움이 되기 위해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구하여 기도하고 복음 선교를 섬긴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면서 문안 인사를 할 때 “주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을 거듭 덧붙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ἐν Κυρίῳ (엔 큐리오) 또는 ἐν Χριστῷ (엔 크리스토)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열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in Christ"가 되고 "그리스도에 있어서" 라고 번역하면 될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 ”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거기서는 모든 입장의 차이 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입니다.
바울은 이 ἐν Κυρίῳ(엔 큐리오)에 의해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갈라디아서에서 실로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6-28)
여러분,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ἐν Κυρίῳ(엔 큐리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상, 하늘과 땅을 관철하여 이 나의 짧은 생애도 넘어서,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16절에서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16절) 라고 말합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라는 것은 더 없는 형제애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습관이 뿌리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하지 않겠지만, 다만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진심으로 인사를 주고받으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과장되게 입맞춤을 한다 해도 거기에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입맞춤에 의한 인사를 장려한 후에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울이 품는 그리스도 교회의 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한다”, 이 최고의 애정 표현이 전 세계의 교회에서 실현된다는 이 위대한 환상입니다.
게다가 여기에는 모든 입장의 사람들이 등장해 왔습니다. 남자와 여자, 왕가의 신하와 노예들, 이교도와 신도, 빈민가의 자선가와 전과자, 유대인도 이방인도 이 입장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 최고의 애정 표현으로 신도의 교제가 실현되고 그것이 전 세계로 확대될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여러분도, 이 바울의 희망에, 또 교회의 비전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안에서 교회를 섬기며, 복음 선교의 한 역할을 담당해 나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