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서워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따라간 여인들은 무덤에 가서 죽은 예수님의 몸을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에서 천사의 목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천사는 “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녀들이 실제로 “봤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이 여성들은 이 눈으로 “봤으니까 믿은 것”이 아니라 천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으니까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빈 무덤을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신앙을 받고 있습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보았는지, 체험했는지의 여부가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믿느냐 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시신이 없어졌는지, 어떻게 몸이 부활하는지는 여기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천사는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6절) 라고 말하고,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7절) 라고 제자들에게 고하라고 합니다. 그녀들은 두려움과 기쁨이 반반인 채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앞에 예수님께서 서 계셨고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라고 여성들을 밀어주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주님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먼저 계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요즘 시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가운데 불안을 안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큰 소망이 아닐까요? 앞날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행선지에 반드시 주님께서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갈릴리에 계실까요? 왜 예루살렘이 아니라 일부러 갈릴리에 가는 걸까요?
갈릴리란 제자들이 태어난 곳이고 제자들의 일상생활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있어서 갈릴리란 예수님과 함께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기적을 보고, 여러 가르침을 들으며 함께 일상을 보낸 장소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우리도 죽었을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나타나기를 축하하는 예배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이야기 속에 있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도 이 여성,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돌아가는 갈릴리는 어디일까요? 그건 분명 우리의 일상일 거예요.
우리 각자의 일상에 먼저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배에서 돌아오는 곳, 가정으로, 직장으로, 그 장소에 예수님께서 오늘도 먼저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지금 하나님께서는 여기에도 함께 계십니다.
우리도 오늘 각자의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두려움과 기쁨을 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약해지면서도 나아가야만 하는 우리 일상의 여로를 함께 하시며 격려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발을 붙잡고, 예배를 드리며 걸어갑시다. 당장은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그곳을 향해 갑시다. 각자의 향하는 곳에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 장소에 오늘도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보다 먼저 각자의 장소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도중에도 계셔서 예배에 초대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 때, 앞을 내다볼 수 없어도 안심하고 그곳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고민하고 슬퍼하면서 가도 됩니다. 그 중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타나셔서 우리를 격려하고 예배를 드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향하는 곳에 반드시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때로는 하나님이 여기 안 계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곳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걸어갑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기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이미 함께 계신다는 소망을 나눕시다.
2023年4月9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Ⅰコリント(고린도전서) 15章 19~20節
〇讃 頌 讃頌歌 159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33 (復活節①)
〇讃 頌 讃頌歌 170
〇聖書奉読 マタイによる福音書(마태복음) 28章 1~10節
〇説 教 「この先に待っておられる神(이 앞에 기다리시는 하나님)」
〇祈 祷
〇聖 礼 典 聖餐式
〇讃 頌 讃頌歌 161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164(1節)
〇祝 祷
【 2023年 4月 9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この先に待っている神」 マタイ福音書 28章 1節~10節
男性の弟子たちはイエスさまの十字架が恐ろしくなり逃げだしました。しかし、最後まで従い続けた女性たちは、墓に行き、死んだイエスさまの体を確認しようとしました。そして、その墓で天使の声を聞いたのです。
天使は「見なさい」と言います。しかし厳密に言うと、彼女たちが実際に「見た」のかどうかは記されていません。それが何を意味するのか言いますと、この女性たちはこの目で「見た」から信じたのではなく、天使がそのように語っているのを「聞いた」から信じたと言うことなのです。
それは私たちも同じです。私たちは空の墓を見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が、この信仰をいただいています。信仰を持つというのは、見たかどうか、体験したかどうかではないのです。御言葉を「聞いて」信じるかどうかなのです。ですから、どうやって遺体がなくなったのか、どうやって体が復活するのかということは、ここでは全く問題になっていません。
天使は「あの方は、ここおられない。かねて言われていたとおり、復活なさったのだ」(6節)と言い、そして、「あの方は死者の中から復活された。そして、あなたがたより先にガリラヤに行かれる。そこでお目にかかれる」(7節)と弟子たちに告げなさいと言います。彼女たちは恐れと喜び半々のまま、急いで走りだしました。その彼女たちの前にイエスさまが立っていて「恐れることはない。行って、わたしの兄弟たちにガリラヤへ行くように言いなさい」と女性たちを後押しします。
このように、私たちが信じる主なる神さまは、私たちの先にいて、待っていてくださる神さまなのです。今の時代、先が見通せない中で、不安を抱えている人がたくさんおられます。でも、神さまは、私たちが向かおうとする先で待っている。それは今の私たちにとって何より大きな希望ではないでしょうか。先行きの見えない私たちの行く先に、必ず主は待っ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
ところで、イエスさまはなぜガリラヤにいるのでしょうか。なぜエルサレムではなく、わざわざガリラヤに行くのでしょうか。
ガリラヤとは、弟子たちが生まれた場所であり、弟子たちの日常生活がそこにありました。そして、弟子たちにとってガリラヤとは、イエスさまと一緒に過ごした場所でもありました。様々な奇跡や、教えを聞き、共に日常を過ごした場所だったのです。
今日はイースターです。私たちも死んだはずのイエスさまがもう一度私たちに現れることを祝う礼拝の時をもっています。私たちもこの物語の中にいる共同体です。私たちもこの女性、弟子たちの一人一人です。私たちの戻るガリラヤとはどこでしょうか。それはきっと私たちの日常でしょう。
私たち、それぞれの日常に先に、イエスさまがおられます。神さまがそこで待っておられます。私たちが礼拝から戻る先、家庭に、職場に、あの場所に、イエスさまが今日も先に待ってい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そして、もちろん今、神さまはここにも共におられます。
私たちも今日、それぞれのガリラヤに戻ります。恐れと喜びを抱えながらかもしれません。でも、神さまは弱気になりながら進んでいく道のりを共におられ、励ましてくださるお方です。
ですから皆さん、私たちは神さまの足にしがみつくように礼拝をしながら、歩んでゆきましょう。すぐにはたどり着け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礼拝しながらそこに向かってゆきましょう。それぞれの向かう先で必ず神さまが待っていてくださいます。
神さまは私たちが毎日を過ごす、あの場所に、今日も先におられるお方です。私たちより先に、それぞれの場所におられるお方です。そして、その途中にもおられ、礼拝に招いてくださるお方です。
私たちは神さまが待っていると知るとき、先が見通せなくとも安心してそこに向かうことができます。悩み悲しみながら向かってもよいのです。その途中にも神さまは必ず現れ、私たちを励まし、礼拝をさせてくださるでしょう。そして、私たちの向かう先に必ず神さまはおられます。
ですから、私たちは希望をもって歩んで行けるのです。それでも、時には、神さまはここにいないと思うようなことに出会うかもしれません。けれども、私たちの行く先に必ず神さまは待っておられるのです。その希望をもって歩みたいと思います。
私たちは今日、神さまが共にいるという喜びと同時に、神さまが私たちの向かう先にすでにおられるという希望を分かち合いたいと願います。
【2023년 4월 9일 주일예배(요약판)】
“이 앞에 기다리는 하나님” 마태복음 28장 1~10절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서워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따라간 여인들은 무덤에 가서 죽은 예수님의 몸을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에서 천사의 목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천사는 “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녀들이 실제로 “봤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이 여성들은 이 눈으로 “봤으니까 믿은 것”이 아니라 천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으니까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빈 무덤을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신앙을 받고 있습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보았는지, 체험했는지의 여부가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믿느냐 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시신이 없어졌는지, 어떻게 몸이 부활하는지는 여기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천사는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6절) 라고 말하고,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7절) 라고 제자들에게 고하라고 합니다. 그녀들은 두려움과 기쁨이 반반인 채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앞에 예수님께서 서 계셨고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라고 여성들을 밀어주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주님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먼저 계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요즘 시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가운데 불안을 안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큰 소망이 아닐까요? 앞날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행선지에 반드시 주님께서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갈릴리에 계실까요? 왜 예루살렘이 아니라 일부러 갈릴리에 가는 걸까요?
갈릴리란 제자들이 태어난 곳이고 제자들의 일상생활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있어서 갈릴리란 예수님과 함께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기적을 보고, 여러 가르침을 들으며 함께 일상을 보낸 장소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우리도 죽었을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나타나기를 축하하는 예배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이야기 속에 있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도 이 여성,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돌아가는 갈릴리는 어디일까요? 그건 분명 우리의 일상일 거예요.
우리 각자의 일상에 먼저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배에서 돌아오는 곳, 가정으로, 직장으로, 그 장소에 예수님께서 오늘도 먼저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지금 하나님께서는 여기에도 함께 계십니다.
우리도 오늘 각자의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두려움과 기쁨을 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약해지면서도 나아가야만 하는 우리 일상의 여로를 함께 하시며 격려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발을 붙잡고, 예배를 드리며 걸어갑시다. 당장은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그곳을 향해 갑시다. 각자의 향하는 곳에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 장소에 오늘도 먼저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보다 먼저 각자의 장소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도중에도 계셔서 예배에 초대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 때, 앞을 내다볼 수 없어도 안심하고 그곳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고민하고 슬퍼하면서 가도 됩니다. 그 중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나타나셔서 우리를 격려하고 예배를 드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향하는 곳에 반드시 하나님은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때로는 하나님이 여기 안 계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곳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걸어갑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기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이미 함께 계신다는 소망을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