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하면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한다”(19절)고 말합니다. 만약 내 자신,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즉 양심의 가책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저지른 모든 죄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죄 많은 자임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 앞에 바른 자,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21절)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됨으로써 마음에 책망받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우리는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1절 후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21b-22절)
이 말씀은 요한복음 9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에 의해 눈을 뜬 맹인이 한 말입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이 의아해하며 사정을 묻는 것인데, 그때 예수님이 자신의 눈을 보이게 해주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을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일을 항상 하시기 때문에 말 그대로 마음의 책망을 받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선천적으로 맹인된 사람의 눈을 보이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는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 맺어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맺어진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음의 책망으로부터도 해방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일을 행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갖고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고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이 여기서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계명”이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23절)입니다. 신앙,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사랑,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사랑,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이 요한의 말에는 당시 교회를 현혹시켰던 가짜 선지자들이 염두에 있습니다. 가짜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주안에 있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고, 교회의 교제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그런 가짜 선지자들을 의식하면서 요한은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 라고 적었습니다.
가짜 선지자들은 그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공동체와 그들과의 교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그 계명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히로시마 교회는 2023년도 교회 표어를 “성령의 교제로 성장하는 교회” 라고 내걸고 있는데, 이 “성령의 교제”라는 것이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 신앙의 형제자매과의 교제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4장 8절에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전4:8)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도 서로 사랑합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자신의 마음이 자신을 책망할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편안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입시다. 이런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을 쏟아 주셨는지를 알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읍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합시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알고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은 많은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
2023年4月23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Ⅰペトロ(베드로전서) 13章 34~35節
〇讃 頌 讃頌歌 27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17 (詩編29編)
〇讃 頌 讃頌歌 262
〇聖書奉読 ヨハネの手紙一(요한일서) 3章 19~24節
〇説 教 「神への信頼(하나님에 대한 신뢰)」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216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4月 23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神への信頼」 ヨハネの手紙一 3章19~24節
ヨハネは「子たちよ、言葉や口先だけではなく、行いをもって誠実に愛し合う」ならば、「自分が真理に属していることを知り、神の御前で安心できる」(19節)と言ってます。もし、自分自身、「心に責められることがあろうとも」、すなわち良心の呵責があったとしても、神さまの御前に心安らかになれ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
神さまは私たちが犯したすべての罪を知っておられます。神さまは、私たち人間が罪深い者であることをよく知っておられる。それゆえ、神さまは独り子イエス・キリストを救い主として、遣わ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を十字架にお架けになるほどに、神さまは、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ているのです。このイエスさまの贖いの故に、私たちのすべての罪を赦し、神さまの前に正しい者、神の子として受け入れてくださるのです。だから、私たちは、神さまの前に、心を安らかにすることができると言っているのです。
21節に「愛する者たち、わたしたちは心に責められることがなければ」(21節)と言っていますが、それは、良心の呵責がない人のことを言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良心の呵責に苦しみながらも、神さまの大きな愛を知った人のことを言っているのです。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を遣わしてくださり、十字架の死へと引き渡された神さまの愛を知ることによって、心に責められることがない神の子とされたのです。イエス・キリストによって示された神さまの愛を知った私たちは、自分の心の責めからも解き放たれたのです。ですから、私たちは神さまの御前で確信を持つことができるのです。
21節後半です。「神の御前で確信を持つことができ、神に願うことは何でもかなえられます。わたしたちが神の掟を守り、御心に適うことを行っているからです。」(21b-22節)
この言葉は、ヨハネによる福音書9章に記されています、イエスさまによって目が開かれた生まれつき目の見えない人が言った言葉です。彼はファリサイの人々から怪しまれ、事情を聞かれるわけですが、その時、イエスさまが自分の目を見えるようにしてくださったのは、イエスさまが神の御心を行う人であるからだ、と証言したのです。
イエスさまは、神さまの御心に適うことをいつも行われるゆえに、文字通り心に責められることがありませんでした。それゆえ、イエスさまは、確信をもって、神さまに祈ることができました。神さまは、そのようなイエスさまの祈りを聞いてくださり、生まれつき目の見えない人の目を見えるようにしてくださったのです。
「神の御前で確信を持つことができ、神に願うことは何でもかなえられる」。このことは、イエス・キリストに結ばれて神の子とされた私たちにも当てはまります。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に結ばれた神の子として、心の責めからも解放され、神さまの御心に適うことを行う者とされているからです。私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にあって、神さまの御前で確信を持って祈ることができる者とされたのです。イエスさまは、「はっきり言っておく。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何かを父に願うならば、父はお与えになる」(ヨハネ16:23)と言われました。そのイエスさまの御言葉を信じて、私たちは父なる神さまに願うことは何でもかなえられるとの確信をもって祈る者とされているのです。
ヨハネがここで「わたしたちが神の掟を守り、御心に適うことを行っている」と言っている「神の掟」とは、「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の名を信じ、この方がわたしたちに命じられたように、互いに愛し合うこと」(23節)です。信仰、すなわち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信仰と、愛、すなわちイエスさまが愛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私たちも互いに愛し合う愛、それが神さまの掟です。
このヨハネの言葉には、当時の教会を惑わせていた偽預言者たちのことが念頭にあります。偽預言者たちは、イエス・キリストが人となって来られたことを否定していました。また、彼らは主にある兄弟姉妹を愛することなく、教会の交わりから去って行きました。そのような偽預言者たちを意識しつつ、ヨハネは、「その掟とは、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の名を信じ、この方がわたしたちに命じられたように、互いに愛し合うことです」と記すのです。
偽預言者たちは、その掟を守っていませんでした。しかし、ヨハネの共同体と彼らとの交わりを持っている私たちは、その掟を守っているのです。私たち広島教会は、2023年度の教会標語を「聖徒の交わりに生きる教会」と掲げていますが、この「聖徒の交わり」というものが、まさに、「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の名を信じ、この方がわたしたちに命じられたように、互いに愛し合うこと」なのです。
私たちは今、共に礼拝を献げ、神さまと信仰の兄弟姉妹の交わりの中にいます。私たちは、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の名を信じ、この方が命じられたように、互いに愛し合っているのです。それゆえ、私たちは、神の霊である聖霊が私たちの内にとどまっておられることが分かるのです。
なぜ、私たちは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の名を信じて、この方が命じられたように互いに愛し合っているのか。それは、私たちの内に、神の霊である聖霊がとどまっておられるからなのです。私たちは、聖霊の働きによって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の名を信じて、聖霊の働きによって互いに愛し合う者とされているのです。
使徒ペトロもペトロの手紙一 4章8節で「何よりもまず、心を込めて愛し合いなさい。愛は多くの罪を覆うからです」(Ⅰペトロ4:8)と語っています。
ですから皆さん、私たちも互いに愛し合いましょう。それによって私たちは真理に属していること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たとえ自分の心が自分を責めるようなことがあっても、神さまの御前に心安らかでいられます。まず私たちを愛し、私たちのためにご自分の命を捨ててくださったキリストの愛を受け入れましょう。こんな私のために神さまがどれほどの愛を注いでくださったのかを知り、その御子イエス・キリストの名を信じましょう。そして、キリストが命じられたとおりに互いに愛し合いましょう。それによって私たちは神さまに属していることを知り、救いの確信を得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まさに愛は多くの罪を負おうからです。
【2023년 4월 23일 주일예배(요약판)】
“하나님에 대한 신뢰” 요한일서 3장 19~24절
요한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하면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한다”(19절)고 말합니다. 만약 내 자신,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즉 양심의 가책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저지른 모든 죄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죄 많은 자임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 앞에 바른 자,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21절)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됨으로써 마음에 책망받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우리는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1절 후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21b-22절)
이 말씀은 요한복음 9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에 의해 눈을 뜬 맹인이 한 말입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이 의아해하며 사정을 묻는 것인데, 그때 예수님이 자신의 눈을 보이게 해주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을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일을 항상 하시기 때문에 말 그대로 마음의 책망을 받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선천적으로 맹인된 사람의 눈을 보이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는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 맺어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맺어진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음의 책망으로부터도 해방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일을 행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갖고 기도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고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이 여기서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라고 말하는 “하나님의 계명”이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23절)입니다. 신앙,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사랑,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사랑,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이 요한의 말에는 당시 교회를 현혹시켰던 가짜 선지자들이 염두에 있습니다. 가짜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주안에 있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고, 교회의 교제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그런 가짜 선지자들을 의식하면서 요한은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 라고 적었습니다.
가짜 선지자들은 그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공동체와 그들과의 교제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그 계명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히로시마 교회는 2023년도 교회 표어를 “성령의 교제로 성장하는 교회” 라고 내걸고 있는데, 이 “성령의 교제”라는 것이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 신앙의 형제자매과의 교제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4장 8절에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전4:8)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도 서로 사랑합시다. 그로 인해 우리는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자신의 마음이 자신을 책망할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 편안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입시다. 이런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을 쏟아 주셨는지를 알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읍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합시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알고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은 많은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