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 3절에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하 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3절) 라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긍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새로 태어났다고 해서 육체가 새로워졌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내면이 새로워지고 다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영혼의 변화를 맛보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내면이 새로 다시 만들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에 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라고 있었는데 이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가 있습니다. 삭개오는 동포들로부터 경멸을 받고 누구에게도 상대당하지 않으며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세리장으로 뻗장대어 왔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무화과나무 위에서 예수님께 걸린 단 한마디,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 그 한마디로 그는 완전히 변해 버린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접한 것입니다. 영혼이 기쁨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그 변한 모양은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 주고 사취한 사람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했을 정도입니다. 이치가 아닙니다. 이치가 아닌 실감, 체험을 성경은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삭개오는,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풍부하신 긍휼에 접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에 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개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3절) 라고 했습니다. 우리 지상의 생명은 언젠가 곧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를 잃고 자기 자신도 죽음에 이릅니다. 그것을 사람의 종말, 생명의 멸망으로 여기고 두려움과 불안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생명의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지상의 생명의 끝은 멸망이 아닙니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입니다.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4절)
제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긍휼로 하나님께 사랑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을 알았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역속, 은혜의 티켓을 손에 넣고 소망을 품어 기뻐하면서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새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 태어난 자는 “두 가지 구원”을 맛봅니다. 하나는 5절에 적혀 있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며, 더 하나는 9절에 적혀 있는 “영혼의 구원”입니다. 말하자면, “장래의 구원”과 “지금 현재의 구원”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구원은 장래의 구원을 받기 위한 “약속 어음”과 같은 것입니다.
또 장래의 구원, 말세에 준비되어 있는 구원이라는 것은 구원받는다는 것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100프로 맛본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하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는다”,“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업”이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종종 “잔치”에 비유하셨습니다. 성대한 잔치 파티장입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초대받는 비유입니다. 파티에 초대되면 우리는 그날을 기대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파티이기 때문에 얼마나 맛있는 식사와 즐거운 여흥이 준비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 파티 날을 그야말로 기대하며 기다리겠군요. 마치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말할 수 없는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8절)며 기다리는 겁니다.
우리에게 종말의 구원, 천국이란 그런, 아니 그 이사의 기쁨이자 즐거움일 것입니다. 이건 제 마음대로 상상이지만, 만약 천국이 거대한 파티장이라면 그곳에서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콘서트나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상의 생명을 마친 사람들이 모두 천국에 모인다면, 그곳에는 지상 역사에 나타난 많은 뮤지션들과 아티스트들과 배우들과 운동선수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고 그것을 자유롭게 보고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상상하을 합니다.
이것은 내 멋대로의 상상일 뿐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신앙으로 천국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한 사람과의 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상봉의 소망을 믿고 지금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종말의 구원, 하늘의 나라는 소망의 나라이며 지금 기쁨이 넘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과 기쁨이 있을 때, 기다리는 것이 있을 때, 사람은 괴로움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생활은 결코 하나님의 "이익"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이익을 믿는 신앙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삶의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받아들이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의 삶이 있다면 나쁜 것도 결코 나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괴로움과 슬픔을 통해 우리는 삶의 깊이를 배우고 이웃에 대한 다정함을 배우고 인격이 연마됨과 동시에 신앙 또한 연마되고 정련되고 확실하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을 받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9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사랑받고 있기를 기뻐하며 종말의 소망, 천국을 기뻐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성경과 만나고 교회와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을 믿어서 다행이다, 기쁘다”는 마음입니다. 그 영혼의 구원이야말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 입장권입니다. 물론 당일권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당일까지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천국의 티켓을 손에 넣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안심해서 살아갑시다. 그 영혼의 구원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의 길입니다.
2023年10月15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ルカによる福音書(누가복음) 18章 19~20節
〇讃 頌 讃頌歌 31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61 (詩編142編)
〇讃 頌 讃頌歌 285
〇聖書奉読 ペトロの手紙一(베드로전서) 1章 3~9節
〇説 教 「チケットを手に入れる喜び (티켓을 손에 넣는 기쁨)」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545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10月 15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チケットを手に入れる喜び」ペトロの手紙一 1章 3~9節
本文、3節に「神は豊かな憐れみにより、わたしたちを新たに生まれさせ」(3節)とあります。私たちキリスト者とは、神の憐れみにより、新たに生まれた者だということです。
新たに生まれたと言っても、肉体が新しくされたというのではなくて、私たち人間が、神の霊である聖霊の働きによって、内側から新たにされ、造りかえ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まるで生まれ変わったかのような魂の変化を味わうのです。
では、私たちの内側が新しく造りかえられるとは、どういうことでしょうか? 一言で言うなら、“神さまの愛と命”に触れるということです。神の「豊かな憐れみ」とありましたが、これが分かる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
ルカによる福音書19章に、徴税人ザアカイの話があります。ザアカイは、同胞から軽蔑され、だれからも相手にされず、愛されていることを感じることができずに、徴税人として突っ張って来ました。そんなザアカイが、いちじく桑の木の上でイエスさまにかけられたたった一言、「ザアカイ、急いで降りて来なさい。今日は、ぜひあなたの家に泊まりたい」、その一言で彼は全く変えられてしまったのです。ザアカイは、イエスさまを通して神の愛に触れたのです。魂が喜びに満ちあふれたのです。その変わりようは、自分が生涯かけて貯めて来た財産をすべて、貧しい人に施し、だまし取った人に返すと宣言したほどです。理屈ではありません。理屈ではない実感、体験ことを、聖書は聖霊の働きと言うのです。聖霊の働きによって、ザアカイは、そして私たちも、神の愛に、神の豊かな憐れみに触れるのです。
もう一つ、私たちが新たに生まれるということは、私たちが“神さまの命”に触れるということです。それは、復活を信じるということです。今日の御言葉に、「死者の中からのイエス・キリストの復活によって、生き生きとした希望を与え」(3節)とありました。私たちの地上の命はいつかやがて死を迎えます。愛する者を失い、自分自身も死に至ります。それを人の終わり、命の滅びと思い、恐れと不安を抱く人が少なくありません。けれども、神さまはイエス・キリストを復活させてくださいました。ペトロをはじめ弟子たちに、復活したイエス・キリストを会わせてくださいました。だから、弟子たちは命の「希望」を抱くようになりました。地上の命の終わりは滅びではない。新しい命の始まりだ、「天に蓄えられている‥‥財産を受け継ぐ」(4節)ための命、永遠の命の始まりだと信じて、希望を抱くようになったのです。
このように、地上で神さまに愛されていること(神さまの豊かな憐れみ)を知り、やがて将来、天国に入れていただく希望を抱いて、喜んで生きている。それが、新しく生まれるということです。
ところで、新しく生まれた者は、“二つの救い”を味わいます。一つは、5節に書かれている「終わりの時に現わされるように準備されている救い」であり、もう一つは、9節に書かれている「魂の救い」です。言わば、“将来の救い”と“今現在の救い”と言って良いでしょう。
そして、今現在の救いは、将来の救いをいただくための“約束手形”のようなものです。
また、将来の救い、終わりの時に準備されている救いというのは、救われるということの完成です。神さまの救いを100%味わうということです。聖書の御言葉で言えば、「天に蓄えられている、朽ちず、汚れず、しぼまない財産を受け継ぐ」、「神の国に入る」ということです。
では、天の財産とは一体どんなものなのでしょうか?
新約聖書の福音書において、主イエスは、天の国をしばしば“宴会”にたとえています。盛大なパーティー会場です。そこに、人々が招待されるたとえ話です。パーティーに招待されたら、私たちは、その日を楽しみに待つことでしょう。神さまが用意されたパーティーですから、どれほど美味しい食事と楽しい余興が用意されているか判りません。そのパーティーの日をそれこそ楽しみに待つでしょうね。まさに魂の救いを受けた人のように、「喜びに満ちあふれて」(8節)楽しみに待つでのです。
私たちにとって、終わりの時の救い、天の国とは、そのような、否それ以上の喜びであり、楽しみであるはずです。これは私の勝手な想像ですが、もし天国が巨大なパーティー会場であるとしたら、そこでは数え切れないほどのコンサートやイベントが開催されていると思うのです。もし地上の命を終えた人が皆、天国に集まるのだとしたら、そこには、地上の歴史に現れた多くのミュージシャンや、アーティストや、俳優や、スポーツ選手や、色々な人たちが様々なイベントを開催していて、それを自由に見ること、聞くことができる。そんなふうに想像いたします。
これは私の勝手な想像に過ぎませんが、少なくとも私たちは、信仰によって、天国に愛する家族や親しい人との再会を夢見ています。再会の希望を信じて、今、慰めを与えられています。終わりの時の救い、天の国とは、希望の国であり、今、喜びにあふれて待ち望むものなのです。
そして、希望と喜びがあるとき、待ち望むものがあるとき、人は苦しみに耐えることができます。神さまを信じて生きる生活は、決して神さまの“ご利益”に満ちあふれ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私たちのキリスト教信仰は、ご利益を信じる信仰ではありません。むしろ、神さまを信じるがゆえに、人生の良いものも悪いものも受け入れる信仰です。そして、神さまのご計画のうちに私たちの人生があるならば、悪いものも決して悪いだけ、不都合なだけでは終わらない。その苦しみ、悲しみを通して、私たちは、人生の深さを学び、隣人へのやさしさを学び、人格が磨かれると共に、信仰もまた磨かれ、精錬されて、確かなものになっていくのです。
今、私たちは神さまから「信仰」を与えられています。「信仰の実りとして魂の救い」を受けています。「神の豊かな憐れみ」により愛されていることを喜び、終わりの時の希望、天の国を喜び待ち望んで生きています。単純に言えば、“聖書と出会い、教会と出会い、イエス・キリストと出会い、神さまを信じていて良かった、嬉しい”という思いです。その魂の救いこそ、天の国への入場を約束するチケットです。もちろん当日券もありますが、それでは当日まで喜びを味わうことはできません。信じて天国のチケットを手に入れ、喜び、感謝し、安心して生きる。その魂の救いこそ、私たちの信仰の道です。
【2023년 10월 8일 주일예배(요약판)】
“티켓을 구하는 기쁨” 베드로전서 1장 3~9절
오늘의 본문 3절에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하 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3절) 라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긍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새로 태어났다고 해서 육체가 새로워졌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내면이 새로워지고 다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영혼의 변화를 맛보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내면이 새로 다시 만들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에 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라고 있었는데 이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가 있습니다. 삭개오는 동포들로부터 경멸을 받고 누구에게도 상대당하지 않으며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세리장으로 뻗장대어 왔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무화과나무 위에서 예수님께 걸린 단 한마디,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 그 한마디로 그는 완전히 변해 버린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접한 것입니다. 영혼이 기쁨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그 변한 모양은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 주고 사취한 사람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했을 정도입니다. 이치가 아닙니다. 이치가 아닌 실감, 체험을 성경은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삭개오는,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풍부하신 긍휼에 접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에 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개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3절) 라고 했습니다. 우리 지상의 생명은 언젠가 곧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를 잃고 자기 자신도 죽음에 이릅니다. 그것을 사람의 종말, 생명의 멸망으로 여기고 두려움과 불안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생명의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지상의 생명의 끝은 멸망이 아닙니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입니다.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4절)
제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긍휼로 하나님께 사랑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을 알았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역속, 은혜의 티켓을 손에 넣고 소망을 품어 기뻐하면서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새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 태어난 자는 “두 가지 구원”을 맛봅니다. 하나는 5절에 적혀 있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며, 더 하나는 9절에 적혀 있는 “영혼의 구원”입니다. 말하자면, “장래의 구원”과 “지금 현재의 구원”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구원은 장래의 구원을 받기 위한 “약속 어음”과 같은 것입니다.
또 장래의 구원, 말세에 준비되어 있는 구원이라는 것은 구원받는다는 것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100프로 맛본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하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는다”,“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업”이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종종 “잔치”에 비유하셨습니다. 성대한 잔치 파티장입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초대받는 비유입니다. 파티에 초대되면 우리는 그날을 기대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파티이기 때문에 얼마나 맛있는 식사와 즐거운 여흥이 준비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 파티 날을 그야말로 기대하며 기다리겠군요. 마치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말할 수 없는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8절)며 기다리는 겁니다.
우리에게 종말의 구원, 천국이란 그런, 아니 그 이사의 기쁨이자 즐거움일 것입니다. 이건 제 마음대로 상상이지만, 만약 천국이 거대한 파티장이라면 그곳에서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콘서트나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상의 생명을 마친 사람들이 모두 천국에 모인다면, 그곳에는 지상 역사에 나타난 많은 뮤지션들과 아티스트들과 배우들과 운동선수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고 그것을 자유롭게 보고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상상하을 합니다.
이것은 내 멋대로의 상상일 뿐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신앙으로 천국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한 사람과의 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상봉의 소망을 믿고 지금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종말의 구원, 하늘의 나라는 소망의 나라이며 지금 기쁨이 넘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과 기쁨이 있을 때, 기다리는 것이 있을 때, 사람은 괴로움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생활은 결코 하나님의 "이익"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이익을 믿는 신앙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삶의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받아들이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의 삶이 있다면 나쁜 것도 결코 나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괴로움과 슬픔을 통해 우리는 삶의 깊이를 배우고 이웃에 대한 다정함을 배우고 인격이 연마됨과 동시에 신앙 또한 연마되고 정련되고 확실하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을 받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9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사랑받고 있기를 기뻐하며 종말의 소망, 천국을 기뻐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성경과 만나고 교회와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을 믿어서 다행이다, 기쁘다”는 마음입니다. 그 영혼의 구원이야말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 입장권입니다. 물론 당일권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당일까지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천국의 티켓을 손에 넣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안심해서 살아갑시다. 그 영혼의 구원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