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로 로마서를 다 읽었는데, 다음 주 공동의회 개최를 앞두고 2023년도의 새로운 한 해를 걷기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바울이 전하고 싶었을 성경 구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이 로마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첫 인사말에 이어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데, 그 감사의 내용이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8절b) 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너희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로마 교회 사람들의 훌륭한 신앙이라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땅에서도 복음이 전파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룩15: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 큰 기쁨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교회가 생기는 것, 또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일까요? 그래서 로마에도 교회가 있다는 것은 전 세계 신앙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작은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일대한기독교회라는 교회는 정말로 작은 교회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진작 살아졌을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원자 폭탄으로 불탄 들판이 된 이 히로시마에 교회를 세우고 그로부터 70년 이상이나 거기에 신앙의 무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바울이 지금 살아 있고 우리 히로시마 교회에 대해 알았다면 분명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9b-10절) 라고요.
바울은 진작부터 어떻게든 기회를 찾아 로마에 가고 싶다고 갈망했습니다. 그것은 15장에서 읽은 대로입니다. 바울은 당시 최서단인 이스파니아 전도를 꿈꾸고 로마 교회 사람들과 교제를 돈독히 하면서 이스파니아 전도의 거점으로 로마 교회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스파니아에 가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죄수라는 입장이지만 로마에 가는 것은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한정된 기간일지도 모르지만 로마 교회 사람들과 교제를 돈독히 할 수는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11절) 라고 말합니다.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고 싶다.
이 말만 단순하게 읽는다면 사도로서의 바울이 일방적으로 신령한 은사를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듯이 읽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록 바울이 사도였다고 하더라도 신앙인들 사이의 교제에 있어서는 신령한 은사는 각각 주어지므로 바울로부터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라는 것과 동시에 로마 교회 사람들로부터 바울에게라는 상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11절 말씀에 이어 바울은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2절) 라고 말합니다.
한 신앙인으로서의 바울은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나 자신의 은사를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만을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신앙인으로부터 배우고 은사를 나누어 받는, 서로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힘을 주고 격려하는 것이야말로 전도자 바울의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이라는 위대한 전도자라도 전도는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가까이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 기도로 지탱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세계전도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런 바울이었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신도들 간의 교제가 아주 중요한 일이며 서로의 은사를 나누는 것이 필수 불가결했음을 여기서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라는 말에는 “거룩한 것의 나눔”과 “거룩한 사람들과의 교제”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사2:42) 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이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하고 그것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예배이거나 애찬회 등의 교제입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교제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교제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우리는 그 지체로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로 이어져 하나의 지체가 된 자들의 교제가 “성도의 교제”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고통을 받으면 모든 사람이 고통받고 한 사람이 기뻐하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의해 행해지는 어떤 사소한 행위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거룩한 교제” 속에 살아 있습니다. 서로 어울리며, 격려하고, 용서하며 사랑 속에 교회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기관입니다. 이 새 일년, 우리는 더욱 이 “거룩한 교제” 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가 많은 이 사회 가운데 교회의 진정한 친구들과 격려하며 사랑으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023年1月22日 主日礼拝式順・説教
〇黙 祷
〇招 詞 ルカ(누가복음) 15章 7, 10節
〇讃 頌 讃頌歌 10
〇信仰告白 使徒信条
〇祈 祷
〇交 読 文 交読文 5 (詩編8編)
〇讃 頌 讃頌歌 214
〇聖書奉読 ローマの信徒へ手紙(로마서) 1章 8~15節
〇説 教 「パウロの願い(바울의 소원)」
〇祈 祷
〇讃 頌 讃頌歌 327
〇奉献祈祷
〇献 金
〇報 告
〇頌 栄 讃頌歌 2
〇祝 祷
【 2023年 1月 22日 主日礼拝説教(要約版)】
「パウロの願い」 ローマ書 1章 8~15節
先週で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を読み終えましたが、来週、公同議会を開催し、2023年度の新しい一年を歩み始める私たちに、パウロが伝えたかったであろう聖書箇所を、もう一度、考えてみたいと思います。それで、このローマの信徒へ手紙を終わることにします。
パウロは、最初の挨拶の文章に続き、神さまへの感謝を述べているのですが、その感謝の内容が、「あなたがたの信仰が全世界に言い伝えられている」(8節b)というものでした。ここでパウロが「あなたがたの信仰」と言っているのは、ローマ教会の人々の立派な信仰という意味で語っ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ローマの地においても福音が宣べ伝えられるという事実なのです。
イエスさまは「一人の罪人が悔い改めれば、神の天使たちの間に喜びがある」(ルカ15:10)と言われました。一人の人が悔い改めると、天に大きな喜びがあると言うんですね。それならば、一つの教会ができること、また、それが存在しているということは、どんなに大きな喜びでしょうか。ですから、ローマにも教会があることは、全世界の信仰者にとって、心から感謝すべきことであったのです。
それはまた、私たちの小さな教会についても同じことが言えます。在日大韓基督教会という教会は、真に小さな教会です。本当だったらとっくになくなっている教会です。そんな教会が歴史の中に消えることなく、原爆で焼け野原になった、この広島に教会を建て、それから70年以上もそこに信仰の群れが存在しているという、それだけで感謝すべきことだと思うんです。
もし、パウロが今、生きていて、私たち広島教会のことを知ったなら、きっと同じことを言うでしょう。「祈るときにはいつもあなたがたのことを想い起し、何とかしていつかは神の御心によってあなたがたのところへ行ける機会があるようにと願っている」(9b-10節)と。
パウロはかねてより、何とかして機会を見つけてローマに行きたい、と切望していました。そのことは15章で読んだ通りです。パウロは当時の最西端であるイスパニアへの伝道を夢描き、ローマ教会の人たちと交わりを深めながら、イスパニア伝道の拠点にローマ教会がなってくれればという願いがありました。結果的にはイスパニアに行くことは叶わず、囚人という立場ですが、ローマに行くことは叶いました。それは限られた期間かもしれませんが、ローマ教会の人たちと交わりを深めることは出来たのです。
パウロはローマ教会の人々に「あなたがたにぜひ会いたいのは、“霊”の賜物をいくらかでも分け与えて、力になりたいからです」(11節)と言っています。「霊の賜物をいくらかでも分け与えて、力づけたい。」
この言葉だけを単純に読みますと、使徒としてのパウロが一方的に霊の賜物をローマの教会の人たちに分け与えるように読めるかも知れません。しかし、たとえパウロが使徒であったとしても、信仰者同士の交わりにおいては、霊の賜物はそれぞれ与えられているわけですから、パウロからローマの教会の人たちへと共に、ローマ教会の人たちからパウロへという相互的なものであるわけです。
ですから、11節の言葉に続けて、パウロは、「あなたがたのところで、あなたがたとわたしが互いに持っている信仰によって、励まし合いたいのです」(12節)と言っているのです。
一人の信仰者としてのパウロは、自分が教えることや自分の賜物を人に分け与えることだけを考えていたわけではありません。他の信仰者から教えてもらい、賜物を分けてもらう、お互いにそのようにすることによって、力づけ合い励まし合うことこそ、伝道者パウロの喜びだったのです。
パウロという偉大な伝道者であっても、伝道は決して一人ではやっていくことは出来なかったのです。身近で助けてくれる人が必要であり、何かと祈りで支えてくれる人がいてはじめて世界伝道が可能となったのです。そんなパウロだったからこそ、私たちの信仰生活にとって、信徒同士の交わりがとても重要なことであり、お互いの賜物を分かち合うことが必要不可欠であったことをここで勧めているのです。
私たちは、使徒信条の中で「聖徒の交わりを信ず」と告白しています。「聖徒の交わり」という言葉には、「聖なるものの分かち合い」と「聖なる人々との交わり」という2つの側面があります。
初代教会の様子を使徒言行録の中で、「使徒の教え、相互の交わり、パンを裂くこと、祈ることに熱心であった」(使2:42)と描写しています。
私たちの信仰というのは、この使徒たちの信仰を受け継ぎ、それを分かち合っているのです。それを具体的に今、私たちが行っているのが、礼拝であったり、愛餐会などの交わりです。それは個人的な交わりに留まりません。主イエス・キリストを中心とする交わりなのです。
教会というのは、イエス・キリストを頭として、私たちはその肢体としてつながっています。この教会につながり一つの肢体となっている者たちの交わりが「聖徒の交わり」です。ですから、一人が苦しめば、すべての人が苦しみ、一人が喜べば、すべての人に喜びがあるのです。愛は自分の利益を求めることはありません。愛によって行われる、どんなささいな行いも、すべての人の益となるのです。
皆さん、私たちはこの「聖なる交わり」の中に生かされています。互いに交わり、励まし合い、赦し合い、愛の内に教会と私たち一人ひとりが建て上げられていくのです。教会はキリストのからだであり、私たち一人ひとりはなくてはならない大切な器官であるのです。この一年、私たちはもっとこの「聖なる交わり」ということを意識しながら信仰生活を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
そして、他者との関わりにおいて問題多いこの社会の中で、教会における真の友と励まし合いながら、愛をもって一人の人間として生きていければと願います。
【2023년 1월 22일 주일예배(요약판)】
“바울의 소원” 로마서 1장 8~15절
지난주로 로마서를 다 읽었는데, 다음 주 공동의회 개최를 앞두고 2023년도의 새로운 한 해를 걷기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바울이 전하고 싶었을 성경 구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이 로마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첫 인사말에 이어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데, 그 감사의 내용이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8절b) 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너희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로마 교회 사람들의 훌륭한 신앙이라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땅에서도 복음이 전파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룩15: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 큰 기쁨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교회가 생기는 것, 또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일까요? 그래서 로마에도 교회가 있다는 것은 전 세계 신앙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작은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일대한기독교회라는 교회는 정말로 작은 교회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진작 살아졌을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원자 폭탄으로 불탄 들판이 된 이 히로시마에 교회를 세우고 그로부터 70년 이상이나 거기에 신앙의 무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바울이 지금 살아 있고 우리 히로시마 교회에 대해 알았다면 분명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9b-10절) 라고요.
바울은 진작부터 어떻게든 기회를 찾아 로마에 가고 싶다고 갈망했습니다. 그것은 15장에서 읽은 대로입니다. 바울은 당시 최서단인 이스파니아 전도를 꿈꾸고 로마 교회 사람들과 교제를 돈독히 하면서 이스파니아 전도의 거점으로 로마 교회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스파니아에 가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죄수라는 입장이지만 로마에 가는 것은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한정된 기간일지도 모르지만 로마 교회 사람들과 교제를 돈독히 할 수는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11절) 라고 말합니다.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고 싶다.
이 말만 단순하게 읽는다면 사도로서의 바울이 일방적으로 신령한 은사를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듯이 읽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록 바울이 사도였다고 하더라도 신앙인들 사이의 교제에 있어서는 신령한 은사는 각각 주어지므로 바울로부터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라는 것과 동시에 로마 교회 사람들로부터 바울에게라는 상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11절 말씀에 이어 바울은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12절) 라고 말합니다.
한 신앙인으로서의 바울은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나 자신의 은사를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만을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신앙인으로부터 배우고 은사를 나누어 받는, 서로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힘을 주고 격려하는 것이야말로 전도자 바울의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이라는 위대한 전도자라도 전도는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가까이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 기도로 지탱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세계전도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런 바울이었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신도들 간의 교제가 아주 중요한 일이며 서로의 은사를 나누는 것이 필수 불가결했음을 여기서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라는 말에는 “거룩한 것의 나눔”과 “거룩한 사람들과의 교제”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사2:42) 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은 이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하고 그것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예배이거나 애찬회 등의 교제입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교제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교제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우리는 그 지체로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로 이어져 하나의 지체가 된 자들의 교제가 “성도의 교제”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고통을 받으면 모든 사람이 고통받고 한 사람이 기뻐하면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의해 행해지는 어떤 사소한 행위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거룩한 교제” 속에 살아 있습니다. 서로 어울리며, 격려하고, 용서하며 사랑 속에 교회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기관입니다. 이 새 일년, 우리는 더욱 이 “거룩한 교제” 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가 많은 이 사회 가운데 교회의 진정한 친구들과 격려하며 사랑으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